집이라는 우주

2025년 04월 06일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뜻의 <일일시호일>이라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거기엔 차를 즐기는 한 주인공이 등장하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차를 마시는 것 외에도 다도 교실을 통해서 차 마시는 예법을 반복한다는 점이 특징이에요. 얼핏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행동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인생의 고난도 행복도 물 흐르듯 지나갑니다. ‘차를 그냥 마시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도 선생님은 “차는 형식이 먼저다”말을 들려주는데, 그 장면이 삶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으면 기회는 언제든 찾아온다는 말로 느껴져서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일상의 형태는 집이 될 수도, 반복하는 일이 될 수도, 매일 쓰는 찻잔이나 화병이 될 수도 있고요. 물론 모양은 완벽할 수는 없지만 형식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무엇을 받아들이고 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오늘은 ‘꽃을 꽂는 사람’으로 활동하는 있는 김환의 아현동 집에 가보았습니다. 

오늘 따뜻한 차를 대접해 줘서 고마워요. 차 마시는 걸 흔히 ‘다도’라고 표현하잖아요. 저마다 취미로 다도를 즐기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것 같아요. 차도 차인데 무엇보다 다구들이 눈에 띄는데요. 마시는 재미도 있지만 보는 재미도 있달까요?

차를 마시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일상에서 공예와 친해지는 접점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제가 차 문화를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이유 역시 평소에 공예에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차를 마시는 일은 다구를 끊임없이 만지고 사용자로서 접근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어요. 처음에 제가 차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다양한 도자나 유리 같은 공예품을 실사용하며 그것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이렇게 차를 두고 마주 앉아서 누군가 직접 내려주는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새삼 특별하게 느껴져요. 차에 관한 친절한 설명을 듣고 집에 있는 소품들을 보니까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드는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꽃을 꽂는 사람’이에요. 보통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플로리스트’라고 부르죠. 하지만 저를 플로리스트라고 소개하면 흔히 꽃집이나 웨딩의 꽃 장식을 생각하는 그런 선입견이 있다고 느껴서 저를 소개할 때는 ‘저는 꽃 꽂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요. 비슷한 말로 우리 말에는 ‘화예가’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화예가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단어로 설명되기보다는 ‘꽃을 꽂는 사람’이라는 불리는 게 좋습니다.

차와 꽃, 묘하게 어우러진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세상엔 다양한 일들 중에서 어쩌다 꽃 꽂는 일을 하게 되었나요?

대학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이것저것 하던 와중에 꽃을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됐어요. 동네 꽃 가게에서 진행했던 원데이 클래스였는데, 제겐 신기했던 경험 중에 하나였어요. 그날 꽃을 탁 잡았을 때의 무한한 세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꽃은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존재예요. 꽃 앞에선 무조건 겸손해야 되고 스스로를 포기하는 행위에 가까워요. 왠지 모르게 꽃을 평생 만져도 이상에 도달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 있어서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꽃을 꽂는 일을 하면서 이 집으로 이사하게 된 사연도 궁금해요.

지금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지방의 작은 도시에 살았는데 그 집이 꽤 넓었어요. 그 집에 생활을 맞춰 놓으니까 서울로 이사해도 집의 규모를 줄일 수가 없더라고요. 기존에 살던 집의 살림을 다 욱여넣을 집을 찾다가 이 집 정도면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사를 결정하게 됐습니다.

아현동 근처엔 버스를 타고 자주 지나가지만 대로변 뒤에 이런 아기자기한 골목이 있는지 몰랐어요. 주민으로서 이 동네에 사는 건 어때요?

사실 원래 제 고향은 아현동이에요.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어요. 비록 주위에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풍경은 예전과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현 초등학교와 아현시장은 제게 익숙해요. 모든 사람 또는 모든 생명들은 원초적인 곳으로 회귀한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이곳에 돌아오게 된 것이 약간 태곳적인 곳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점은 제가 작업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에 하나에요.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살면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공간이 규격화되어 있잖아요. 구옥 빌라에도 형태만큼이나 다양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집의 인테리어를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포인트는 무엇이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집에는 꼭 거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의 질은 공간 분리에서 온다고 믿거든요. 거실에 큰 테이블을 두고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업무도 봐요. 소파를 두고 편하게 지낼 수도 있지만 입식 생활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시각적으로 피로감을 금방 느끼는 편이라, 테이블 도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싱크대도 항상 비어있어야 마음이 편해요. 인테리어를 대단히 신경 쓰기보다 항상 같은 상태를 유지하거나 거슬리는 부분을 없애는 쪽에 신경 쓰고 지내고 있습니다.

벽이 하얗고 소품들이 알맞게 배치되어 있어서 갤러리 같은 느낌도 들고요. 그러고 보니 이 집에는 직접 그린 액자나, 수집한 소품같이 생활이나 예술을 느낄 수 있는 물건들은 많지만, 의외로 꽃이나 식물이 안 보이는 게 신기한 거 같아요.

맞아요. 의외로 화분 키우는 걸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화분에 심긴 식물을 보면 어딘가 갇혀 보이는 느낌이라서요. 아무래도 작업할 때 꽃을 많이 보다 보니까 굳이 집에서 키워야 하나라는 생각도 있고요. 제 작업의 절반 이상은 자연에서 채집하는 꽃을 쓰기 때문에 화분으로 옮겨심는 것 대신에 자연 상태에서 보자는 마음이에요.

아무래도 꽃을 다루는 게 일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 꽃이 있나요?

작년 여름 즈음 나팔꽃을 꽂고 싶었어요. 여름이 나팔꽃을 보는 좋은 계절이거든요.  마침 집 앞에 나팔꽃이 피어 있었어요. 그런데 날씨가 더우니까 나팔꽃 봉우리가 못 피고 계속 아침해에 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해 뜨는 시간에 맞춰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나팔꽃이 피는지 지켜봤어요. 그때 결국 꽃이 딱 세 송이가 피었는데, 그 순간을 기다리던 여름의 나팔꽃이 기억에 남아요.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오래된 가구부터 공예품, 책들까지 정성 들여 수집한 물건들이 많아 보이는데, 집에 있는 물건을 고르는 기준이 있는지 궁금해요.

어떤 물건은 우리 집에 와도 되겠다는 그런 본능적인 촉이 있어요. 저희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거든요. 예를 들어서 다구의 경우 잔 받침을 하나 고를 때 우리 집에 있는 잔과 어울리는지, 이 테이블과 맞는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세계로 인식해요. 마치 이 집이 하나의 우주 같은 존재죠. 그래서 오래된 물건인지 새 물건인지를 떠나, 이미 있는 것과 함께할 때 어떤 이미지를 그릴 수 있을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럼 집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물건은 뭐예요?

얼마 전에 고미술상에서 구입한 자수 액자예요. 다른 물건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처음엔 이 액자가 절반은 가구에 가려져 있었어요. 얼핏 보이는 모습이 난초 같아서 주인께 보여달라고 했어요. 이 액자의 첫인상은 난초가 이렇게 조용할지는 몰랐고, 아래쪽 이파리에 앉아 있는 잠자리에 매료됐어요. 처음에 보자마자 꽃의 색이 도드라지지 않고 제 작업 색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초화가 제 본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초화는 말 그대로 풀과 꽃인데, 패랭이나 나팔꽃, 달개비 같은 식물들 있잖아요. 그런 꽃들은 속절없이 시드는 속성이 있는데 저게는 무척 중요해요. 꽃은 언젠가 시들고, 결국 시드는 과정을 보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물건을 보거나 대상을 관찰하는 시선이 남다른 것 같아요. 꽃을 꽂는 사람으로서 기물들과 꽃의 접점은 어떻게 찾아가고 있어요?

어느 날 친한 선생님이 제가 가지고 있는 기물들애 꽃을 꽂아서 소개해 보면 어떻냐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처음에는 별로 내켜 하지 않았고 흘려들었는데 그 말이 자꾸 맴돌더라고요. 어떤 측면에서 도자기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썩지 않는 쓰레기이기도 한데, 왜 그 인위적인 세계에 우리가 편안함을 느낄까 궁금했어요. 여러 고민 끝에 다양한 도자 작가들의 작품에 제가 꽃을 꽂는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최근까지 도자와 꽃을 중심으로 작업을 선보여온 걸로 알고 있어요. 

지난해 제가 선보였던 <도예가시리즈>는 도자기와 꽃의 불가분함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꽃을 빼면 도자기가 빛을 잃고, 꽃도 도자기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꽃이 되잖아요. 제가 하는 작업에선 꽃을 위한 도자가 아니고 도자를 위한 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하나가 되거든요. 도자기와 꽃이라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존재가 하나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듯, 새로운 일들을 맞이할 준비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가장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전시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개인전 <녹는 땅에 피는 것들>은 봄이 오는 것처럼 생명력이 움트는 것과 온도감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데에 많은 고민을 기울였어요. 무엇이 우리를 온도감으로 이끌고 있을까 하는 것은 시리즈를 기획하며 가장 고심하던 마음이기도 해요. 그 가운데에 느낀 것 중 하나는 메마른 땅의 틈으로, 흙의 틈으로. 새로운 에너지는 흐르고 새어들면서 틈은 결국 스미는 것, 그리고 동시에 새어 나오기도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마음은 제가 결국 도자 작업을 도전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개인전에서 꽃 작업과 더불어 도자 평면작업을 처음 공개할 예정이에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정원을 만드는 사람은 마치 자신만의 우주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던 조경가의 말이 떠올랐어요. 환님의 집안에나 작업 세계 안에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나요?

그렇죠. 제가 꽃을 대하는 태도도 똑같아요. 제 꽃은 한 송이 빼면 명백히 무너져요. 한 송이도 뺄 수 없고 한 송이도 더 할 수 없는 지점을 만들려고 해요. 꽃은 어떻게든 기물을 벗어날 수 없는 부지하는 존재예요. 물에 담겨야 되기 때문에 도자기라는 형태를 필연적으로 붙잡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돼요. 저는 그 꽃과 기물을 다루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지낸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사람도 결코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점점 더 인정하고 있습니다.

꽃 꽂는 사람 김환 @hwankm

Big Issue Korea Vol. 334

글: 정규환

사진: 김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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