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 퀴어들의 사랑

2025년 02월 12일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그곳에서 현지인 동성 파트너를 만나서 삶을 꾸리고 있는데, 약 2주간 그와 파트너가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머물며 지냈다.

외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모습일지 늘 궁금했다. 이번 기회에 친구의 초대를 받아 동네에서 유명한 친구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가보기로 했다. 오클랜드 항구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파인 다이닝이었다.

친구가 일하는 일터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매니저로 일하는 프로다운 모습, 동료들과 친하게 어울리는 모습이 그곳에서 본 현지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2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민자이자 성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는 친구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가능한 것

▲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도시 오클랜드의 카랑가하페 로드(Karangahape Road) 일명 케이 로드(K’Road) 중심에 그려진 무지개 깃발 그림 ⓒ정규환

뉴질랜드 생활은 한국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게이 커플이라는 걸 직장에 숨기지 않아도 됐다. 길거리에서도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다닐 수 있어 부러웠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태원-한남동으로 이어지는 동네에서 가장 힙한 거리 카페 곳곳에 성소수자 권익 보호를 뜻하는 무지개 깃발이 펄럭였다. 곧 2월에 열릴 퀴어 퍼레이드를 홍보하는 광고들이 보였다. 친구는 뉴질랜드에 살며 가장 좋은 점으로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과 지역 사회에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는 걸 꼽았다. 편견이 없는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친구에게 조심스레 오랜 궁금증을 물었다. ‘한국을 떠난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친구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곳에 오지 않는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는 낯선 나라에서 이민자로서 사는 어려움보다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게 현실적으로 더 어렵다고 느꼈다. 한국의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지만, 적어도 자신의 사는 이곳에서는 파트너의 부모님을 만나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20대 초반에 한국을 떠난 그이기에 한국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아는 오래된 친구는 내가 유일하다. 친구와 나는 멀리 떨어져 살지만, 서로의 삶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서로의 증인이다. 우리는 각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장 나다운 삶을 살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우리에겐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까 응원의 마음이 생겼다.

이수현과 김인선의 사랑

▲ 영화 <두 사람> 스틸컷 ⓒ시네마달

친구와 나를 포함 성소수자에게 더 많은 삶의 본보기가 필요하고 느끼던 와중에, 이민자 성소수자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반가운 영화를 발견했다. 오는 2월 12일 국내 개봉을 앞둔 <두 사람>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노년과 이주민, 그리고 성소수자로서의 삶을 정면으로 담는다. 이수현·김인선 두 사람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독일에서의 일상을 쫓는다. 파독 한인 간호사 1세대로서, 동성혼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레즈비언 부부로서, 그리고 한인 교회의 교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삶을 일궈온 독일의 삶 곳곳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여러 소수자성을 가진 두 사람의 존재와 삶의 궤적은 그 자체로 사회적 맥락에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는 격동기 시절 한국을 떠나 외국에 정착하게 된 이주민이자 성소수자라는 맥락을 교차적으로 드러낸다.

평생 환자를 돌보고, 교인으로서 산 두 사람이 같은 뜻으로 이종문화간 호스피스 ‘동행’을 설립하고, 독일 사회에서도 퀴어 커뮤니티는 물론, 지역 사회의 정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두 사람의 일상이 겉으로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독일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공동체를 지켜온 노력을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의 인연

▲ 영화 <두 사람>의 주인공 김인선의 젊은 시절 사진 ⓒ시네마달

두 사람의 인연만 놓고 보자면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1948년 태어난 이수현은 1970년 22살의 나이에 독일에 도착해서 간호사로 근무했고, 1950년 태어난 김인선은 비슷한 시기 어머니의 초대로 독일에 정착해 파독 광부와 결혼하고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1985년, 두 사람은 독일의 한 교회 수련회에서 처음 만나게 돼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억압적인 과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꽃피운 여성들의 사랑 이야기는 극영화를 통해서도 예술적으로 표현돼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캐롤>(2015), <아가씨>(2016),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8) 등 대표적인 레즈비언 영화들의 공통점은 여성 둘이 힘을 합쳐 이성애 중심의 결혼이라는 억압에서 해방을 추구하는 스토리라는 점이다. 그래서 낯선 나라 독일에서 평생을 함께할 사랑을 만난 두 사람의 운명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으로서 이혼한다는 것은 특히 독실한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는 낙인과 다름없고, 거기에 상대가 동성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아닌 현실임에도 두 사람이 주의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사랑을 선택한 것에 얼마나 큰 용기가 뒷받침돼야 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인간적인 고뇌 역시 영화 속에서 심도 있게 다뤄진다. 남성과 결혼 후 이혼한 김인선이 기독교 신자로서도 얼마나 힘든 선택을 한 건지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를 통해 드러난다. 비록 종교적 세계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적어도 사랑 안에서만큼은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마주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삶을 향해 질문하는 사람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순수함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노년의 사랑

▲ 영화 <두 사람>을 연출한 반박지은 감독은 2017년 진행된 서울역사박물관의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전시에서 본 사진 속 베를린의 두 노년 커플이 궁금해 영화를 찍게 됐다고 밝혔다. ⓒ시네마달

영화는 파란만장했던 두 사람의 과거를 나열하는 대신 노년이 된 두 사람의 현재에 오롯이 집중한다. 두 사람이 태어난 1950년대는 미국 등에서 동성애를 질병으로 치부하던 암흑기였다. 독일 역시 나치 독재 정권 시절 당시 유대인과 더불어 동성애자 홀로코스트라는 흑역사가 있다. 영화를 연출한 반박지은 감독이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건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사진에는 나치 시절 당시 국가권력에 희생당한 동성애자 추모비 앞에서 손을 잡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담겼다.

과거를 기억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듯한 이 사진처럼, 실제로 두 사람은 겪어보지 않은 미래로 앞으로 나아간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두 사람이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비교적 최근인 2022년 8월 결혼을 하게 된 것도 김인선이 큰 병을 앓고 돌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수현은 제도적 결혼의 장점으로 서로의 보호자로서 병원에 떳떳하게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어쩌면 두 사람이 쌓아온 모든 과정은 죽음으로 귀결되는 인간의 존엄을 위한 투쟁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촬영이 끝나고 관객을 만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영화는 낡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현실이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두 사람의 시간과 기록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울림을 준다.

영화는 거창한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랑을 서로 돌봐주며 나이 들어가는 것, 서로의 등에 로션을 발라줄 수 있는 것, 새해를 맞이하고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와 뉴질랜드에 사는 친구가 그랬 듯, 동시대를 살아가는 성소수자의 삶은 서로의 거울이 된다.

<두 사람>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0년간 만난 동성 파트너와 혼인신고를 하고, 혼인평등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나로서도 이 영화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특히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모습은 혼인신고를 하며 내가 상상한 부부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었다. 성소수자들이 오랜 시간 이어가고 그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은 만큼, 두 사람의 흔들림 없는 관계가 더욱 깊이 와닿았다.

여전히 성소수자를 향한 법적·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한번 사는 인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라는 이수현의 말에 끄덕였다. 나와 파트너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혼인평등법이 만들어지기 전의 시간도 의미가 있고, 결국 사랑이란 서로를 지지하며 죽을 때까지 함께 걸어가는 것임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렇게 나도 그들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자신있게 권한다. 성소수자로의 삶에 확신이 들지 않거나, 만약 누군가 성소수자의 미래가 어떠냐고 묻는 이들에게 이 <두 사람> 속 사랑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정규환의 다르게 보기]

오마이뉴스에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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