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다루는 방법

2026년 08월 02일

“종길, 나 고민이 있어.”

커피색 거품이 피어오르는 기네스 생맥주를 들이키며 내가 말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한여름밤의 한 호프집에서 마른 안주를 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바버샵 오픈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갈지 말지 고민중이야.” 종길은 어떤 동료가 비슷한 레파토리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며, 새로운 이야기가 있으면 한번 해보라는 듯 나른한 눈빛을 하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바버샵에 가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목마른 작가들의 공통점이냐며 이야기를 했는데, 옆에 앉아있던 사무실 새 동료 은우 역시 거들었다. “문창과 다닐 때 그런 사람 많이 봤어요.” 과에 있던 남학우는 8할의 여미새와 2할의 게이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무튼 나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었다. 나는 바버가 가위질을 하며 맞으편 거울을 통해 새깅 패션을 은근히 보이는 것이 신경쓰였는데, 정확히 말하면 보여줬다고 해야할지 내가 봤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순진하게 내가 그의 영업에 넘어간 걸까? ‘이런 식으로 장사하니?’라는 게 미용 업계에서 통하는 말이라지만, 그전까지 내 이야기에 시큰둥하던 종길은 속옷 이야기가 나오니까 신이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결론은 그래도 이왕 예쁜 팬티를 입은 거 누군가에게라도 보여주는 쪽이 더 보람있지 않겠냐며. 《속옷을 고르며》라는 수필집을 쓴 종길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내가 오래다니던 미용실을 떠나 바버샵에 발을 들인 건 불과 올 봄부터였다. 2026년 병오년을 맞이해 내게 큰 변화가 생길거라고 했는데, 나는 화장품을 바꾸거나 새로운 바버를 찾는 것도 일종의 그런 일이라고 생각해서(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겉으로는 잘 티가 안나는데, 의외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심사숙고해서 새로운 바버샵을 물색했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던 기억은 뭐랄까, 카페나 레스토랑처럼 생존과 직결된 곳이 아닌, 서점 같이 많은 정보와 자극으로 혼란스러운 곳도 아닌, 편집샵이나 옷가게처럼 내 안의 열등감이나 빈부를 상기시켜주는 곳도 아닌, 뭐랄까 말그대로 나를 마주해야 하는 곳이었다. 내 셔츠의 두 번째 단추를 한손으로 자연스럽게 풀던 바버의 능숙한 손길,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바리깡의 미세한 진동, 머리를 정돈하고 안경을 세심하게 씌워주던 모습. 계산을 할 때는 늘, ‘천천히 하세요.’라는 말을 덧붙이는 사려깊음까지.

그는 누구보다 남자를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한 시간 동안 얇은 천으로 몸을 감싸고, 수많은 남자를 가죽 의자 위에 앉혀 놓고, 온갖 기구들로 체모와 흔적들을 잘라냈다. 가장 연약한 부위인 목덜미까지 허락하고, 차가운 면도칼을 눈 옆에서부터 서서히 귀 아래까지 들이밀 때면, 본능적으로 긴장하게 됨과 동시에 눈을 질끔 감고 이내 몸을 맡기게 되는 것이다. 이윽고 거울에 비친 아이처럼 순진해진 모습, 털이 골라지고 다듬어지면, 누구라도 그의 지배적인 손길 사이에서 묘한 나르시시즘과 섹슈얼리티가 피어나고.

어느 날, 나는 평소처럼 바버샵을 나가며 왼쪽의 커다란 거울을 살짝 보고, 맘에 드는 미소를 지으며 가게를 나섰다. 벚꽃이 지기 시작하는 따스한 봄, 고즈넉한 서울의 사대문안 한 담벼락 3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가 말했다. “저, 손님 잠시만요.” 나는 지갑이라도 두고 갔나 싶었는데, “제가 사실 첫 바버샵을 곧 오픈하는데, 혹시 시간이 된다면 다음주 금요일, 저녁 놀러오시겠어요? 지인들과 손님들을 불러서 작은 파티를 하려고 해요.” 낮엔 머리를 자르고, 저녁엔 가게 오픈 준비로 바빠보였지만, 이 말을 건네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첫 시작을 앞둔 어느 사람처럼 그의 눈가와 손끝엔 생기가 돌았다.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나이지만, 인생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인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남편과 미용사, 이제 더 이상 미장원 방황은 끝내고 싶었다. 그것은 종결하고 싶은 일종의 과거의 로맨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고심 끝에 도착한 그날의 파티장은 말그대로 수컷의 향기가 가득 풍기는데, 헤어스타일은 각도기로 잰 듯 반듯하지만 풍성한 수염을 가진 사람들,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겐 블랙 페퍼 솔트나 우디한 이솝 휠의 향이 날 것 같았다. 바버샵과 그 주위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이 사람들은 남자를 좋아하고, 털을 좋아하고, 남성의 아름다움을 쫓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주 일시적이고 쉽게 깨어지기 십상이지만,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는 말처럼 그것을 미적 영역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주 작은 디테일의 차이를 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헤테로섹슈얼과 호모섹슈얼이 만나게 되는 지점이 생긴다. 누군가가 남자를 좋아하든 여자를 좋아하든 그것은 인간이 알 바가 아니었다. 따분한 일상에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연예인들의 스캔들처럼, 이 세상엔 얼마나 성정체성이니 성적지향이니 하는 것들로 사람의 인생이 망쳐지는 일들이 많은가.

이날은 그의 부름으로, 그의 친구들과 그의 전 직장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그의 세계 안에 들어온 기분이었고, 그 낯섦이 썩 나쁘진 않았다. 그 속에서 이렇게 오랜만에 한 인간의 남자를 오래도록 생각하고 바라본 적이 있는가, 생각했다. 그래,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아끼는 셔츠(단추는 두 개 풀고)를 입고, 반짝이는 진주목걸이를 하고 등장한 나는, 사람들에게 ‘초대받을 만한’ 손님들 중 한 명으로 소개되었다. 수많은 손님들 중에서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기뻐할 수 있었다. 트로피(인형?)로 존재하는 것도 때로는 행복하니까.

그러던 와중에 내 앞에 예상에 없었던 ‘임자일주’의 남자가 나타났다. 내 사주를 봐주던 이야기를 옆에서 엿들은 것이 분명했다. “안녕하세요. 저도 손님인데, 그쪽도 손님으로 오셨어요?” 자연스럽게 그의 사주 이야기로 대화가 흘러갔고, 그 역시 생년월일을 읊고, 이름까지 말하고, 나도 그의 운명에 대해 옆에서 겸손한 학생처럼 들어봤다. 고운 거품의 샴페인을 마셔 발그레해진 볼, 하얀 피부, 제모를 한 깨끗한 턱. 어딘가 이 바버샵 파티에는 어울리지 않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사주의 60개 일주 중에 임자일주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한때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라이징썬 사건의 ‘김영준’의 사주라는 것이다.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임자일주의 이미지는 적어도 내게 그런 것이었다.

“담배 피우세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가 내게 물었다.

나는 “제가 담배를 안 펴서요.”라고 말했다.

1차 방어,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가봐야 될 거 같아요.”

“같이 나갈까요, 그럼?”

우리는 같은 바버샵을 다니고 있었고, 집 방향이 같은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란스러운 파티 장소에서 멀어졌을 때, 그가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옆에서 형 이야기 들으면서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책 소개에 게이라고 쓰여있던데, 맞아요?”

“보셨군요. 맞아요. 아까 안에서는 괜히 조심스러웠어요.”

바버샵 사장님이 저를 작가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했는데, 사람들이 제 이름을 핸드폰으로 검색했잖아요. 제 인스타그램도 바로 옆에서 구경하고, 물론 팔로우는 하지 않았지만. 저는 그럴 때가 사실 가장 떨려요. 다른 작가들도 이런 기분일까요? 커밍아웃엔 늘 익숙해져있다고 생각하는데, 안전한 상황, 제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같이 있는 자리에서 그런 출판사의 홍보글이나 책의 리뷰나, 아니면 인스타그램에 한껏 멋을 부린 그런 콘텐츠로 보여진다는 사실이 괜히, 특히 오늘 같은 자리에서는 저뿐만 아니라 사장님까지 알게 되면 혹시 불편해 하진 않을지.

“우리 근처에서 맥주 한 잔 할까요?”

누구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의 신호였다.

“좋아요.”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근처의 바를 물색했다.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그런 장소에 가야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이미 정해져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가 얼마만이었던가. 나는 불과 몇 분 정도의, 탄로나기 전의 시간을 즐겨야겠다. 마치, 곧 영업시간이 끝나는 식당의 라스트 오더처럼, 궁금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고,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도 이야기할 거고, 혼자 사는지도 이야기할 거고.

“그런데, 사장님도 이쪽 같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까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이 사장님 너무 귀여워요. 한 시간 반 동안 머리를 잘라주니까.”

“아, 정말요? 전 두 시간 동안 잘라주시던데.”

한 시간 반으로 만족하고 있던 내가 진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같은 사람의 손에 다뤄져본 사이였다. 같은 가위, 같은 면도칼, 같은 목덜미의 긴장. 어쩌면 내가 그에게서 느낀 동질감은 그런 종류였는지도 모른다. 나만 다뤄진 게 아니라는, 이상한 안도 같은 것. 많은 손님들 중에서 말 잘 들을 거 같은 남자를 부른 건지, 아니면 조금은 쌩뚱맞은 부름에 응답한 게 하필 우리였는지는 여전히 미스테리였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바버샵 사장님의 촉이 남달랐다는 것이다.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뭘 기대하고 온 거냐고.

“그런데, 사실 저 결혼했어요.”

어느 타이밍에 말해야 할지 애매했지만,

나는 결국 해야할 말을 이윽고 말해버렸다.

“그게 가능하다고요?

결혼한 사람 실제로 처음 봐요.”

그가 말했다.

11시까지 영업하는 수제 맥주집에서 딱 한 잔씩을 비우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를 나눴다. 그는 종로에서 친구가 불러서 가기로 했다고 했다. 원래 있던 약속인지, 예상과 다른 방향이라 급하게 잡은 약속인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다만 그가 손을 흔들고 돌아서는 그 잠깐 동안, 나는 아주 잠깐 그의 오늘 이 순간, 여름밤을 상상했다.

며칠 뒤, 사무실에서 종길과 만났다.

서로 다른 아이맥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커피를 내리며 물었다. “지난 주에 나 바버샵 파티 간다고 했던 거 기억나?”,“응, 어땠어?” 종길이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바버는 역시나 젠틀했고, 근데 거기서 의외의 남자를 만났는데 나 결혼했다고 말해버렸다고, 오히려 그게 더 떨리는 기억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왜 굳이 결혼했다고 말한 거야?” 종길이 다시 물었다. 왜 그 홍상수 영화 있잖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결혼 사실을 숨기면 망하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오히려 잘 풀리는, 그거 보고 나도 따라 괜히 한번쯤 괜히 정직해지고 싶었나봐. 내말을 듣더니 종길이 웃었다. “근데 그 영화에선 솔직히 말해서 사랑을 얻잖아. 그래서 결론은?” 글쎄, 라고 나는 묘한 여운으로 너도 그 상황이 되어 봐, 라고 대꾸하며, 다음에 또 그 바버샵에 가면 이번엔 다른 걸 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자를 잘 다루는 방법 같은 거, 어쩌면 나 말고 그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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