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반지

2024년 08월 02일

드디어 약혼반지를 맞추기로 한 날,

도심에 있는 한 백화점에서 남자친구와 저녁 6시에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나는 남은 시간에 1층의 매장들을 우선 둘러보며, 마음에도 없는 선글라스를 착용하며 아주 약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어째서인지 오마이걸의 음악(비밀정원 같은)을 들으며 소녀로 돌아간 것 같은 붕-뜬 기분을 하루 종일 즐기고 있었다.

부티크 방문을 예약한 밤, 소파에 앉아 남자친구와 우리 약혼반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10주년에 맞춰 반지를 하자고 이미 오래전부터 이야기했지만, 막상 사려고 알아보니 브랜드부터 가격까지 천차만별이라 좋은 결정을 하는데 각자의 확신이 필요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하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가격은 얼마라도 중요하지 않아. 혹여 빚을 지더라도, 마음에 드는 반지를 갖고 싶어. 그게 우리 사랑의 확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까운 미래에 나는 이 반지 하나로도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이 반지고, 그 외의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역설하는 것만 같은, 가슴 깊은 곳에서 반지를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매장에 앉아 내가 먼저 상담을 시작했고, 점원이 “여자친구분 오시면 천천히 같이 보세요.”라고 친절하게 탄산수를 건네며 말했다. 5분 뒤에 살짝 놀래킬 의도는 없었지만, 내가 먼저 파트너의 성별을 말하는 것도 어딘가 오버스러워서 참았다. 그는 우리와 나이 또래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였다. 2000년대 일본 축구 선수 같은 외모를 한(나중에 본인도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그는, 이후 우리에게 계속 “정말 멋있으세요.”라는 말을 했다. 단순한 영업 멘트 중 하나겠지만, 듣기에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계속 듣고 싶었다. ‘이래서 돈을 쓰고, 결혼을 하는 거구나’ 세상이 이렇게 우리에게 친절하다고 느끼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는 ‘오래 만나는 비결이 뭐예요?’, ‘반지를 맞추게 된 계기가 있나요?’ 등 질문을 이어갔다. 나는 ‘방귀 트지 않기요’, ‘더 늦기 전에 30대에 결혼하려고요’라고 진심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말하다 보니 긴장도 풀리고 점점 더 이 순간의 행복감을 즐기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

두 사람이 함께 진열대 앞에 앉아 손가락에 처음 끼워 본 그 반지, 부드럽게 손가락을 감싸는 핑크빛이 감도는 노오란 링. 보석상과 세공사의 이름에서 따온 브랜드 이름이 필기체로 써진, 그 반지를 끼고 있는 두 사람이 손은 가녀리기보다는 투박했지만, 분명 같은 모양, 같은 사이즈의 두 개의 반지는 가장 반짝이고 있었다. 직원은 “보석 구매는 곧 인연이에요. 두 분이 오늘 여기에 오신 것도, 이 반지가 남아있던 것도 다 운명일 거예요.”라고 자본주의 끝판왕 같은 멘트를 남겼지만, 나는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인보이스에 사인을 하고, 두 개의 견고한 케이스에 담긴 반지를 바라보며, 우리는 보통의 커플처럼 가증스러운 표정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직원에게 우리 사진을 남겨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기야 사진 좀 봐, 진짜 부티가 나. 내가 이랬었나?”라며 집에 오는 버스에서 깔깔거리고 한바탕 웃었다.

사랑은 최고의 도파민이다. 너무나 행복한, 억지나 긴장감 없이 그냥 우러나오는 표정이 증명하고 있었다. 8월의 첫날, 반지를 끼고 처음으로 외출했다. 약지에 끼는 반지는 아직 어색하게 느껴져셔 검지에 끼기로 했다. 그냥 악세서리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만 같은, 반지를 느끼는 것만으로 든든한 일종의 구속감, 결혼을 약속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기에, 일종의 증거가 필요했지만, 요즘은 가끔 둘이서 길을 걸으면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싶을 때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세상에 둘만 있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결혼을 하기까지 엔 앞으로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이 반지의 강한 힘으로 어딘가로 이끌리고 있는 것 같다.

코멘트

10 thoughts on "두 개의 반지"

    남훈

    ㅋㅋㅋㅋ재밌다~ 나도 점원 반응이 제일 궁금했는뎋ㅎㅎ 우아한 약혼반지 축하드립니다 💍

    2024.8.3
    지민

    🥹🦋🦋

    2024.8.2
    🕊️

    재미있고 감동있고 따뜻하다..🥰 축하해요 형!!

    2024.8.2
    반지의제왕

    아름답다리

    2024.8.2

    🩷 멋져

    2024.8.2
    성수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 잘봤어요 앞으로도 볼래요잉

    2024.8.2
    😉

    규환님 너무 축하드려요! 멀리서 응원할게요. 저도 명품 쥬얼리 너무 좋아해서… 어떤 반지인지 넘 궁금하네요!!!!

    2024.8.2
    🌏

    눈물나요ㅜ 사랑에 대해 또 한번 배워갑니다..

    2024.8.2
    현세

    꺆 너무 설레고 재미있는 글...💕 축하드려요!💕

    2024.8.2
    ❤️

    두사람의 약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행복하기😉

    202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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