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타워의 리듬감

2026년 01월 28일

가끔은 남들이 웃을 때 함께 웃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함께 웃을 수 있는 건 생각보다 큰 행운이죠. 유머를 공유한다는 건 친구를 사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웃음이라는 게 사실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새삼 느끼게 돼요. 남을 웃긴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고, 나를 웃게 만드는 것도 일종의 돌봄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그래서 더 알고 싶어졌어요. ‘웃음’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관계를 열어주고,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그래서 보문동에 사는 금개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지금 이 집에 살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이전에 망원동에서 오래 살았어요. 그 동네에 살면 멋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실제로도 여러 에세이에서 보던 작가들이 많이 살고 있었거든요. ‘나도 예술가들 사이에서 살아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새로운 퀴어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그 시절이 정말 특별했을 것 같아요. 그 시절이 금개에게 준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또 그런 경험이 새로운 집을 고를 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궁금해요.

그 시절은 정말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비슷한 배경, 비슷한 언어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어느 순간 ‘이 한복판에서 조금 떨어져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마침 그때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지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늘었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생활 방식을 고민하게 됐어요. 혼자 사는 건 외롭고, 그렇다고 연인과 동거하는 일대일 구조는 아직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친구랑 같이 살고 싶다”는 말을 여기저기 하고 다니던 중, 지금의 룸메가 이 집을 발견했어요.

이 집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우리가 오기 전에도 룸메의 연극 동료 두 명이 살고 있었어요. 그 친구들이 이 집을 정말 아끼는 마음이 커서, 꼭 아는 사람에게 넘겨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집이 예쁘다, 중앙 계단이 있다, 유럽 같다”는 얘기에 한 번 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따라왔죠. 그런데 막상 와보니 저도 바로 마음이 움직였어요. 햇볕이 환하게 들어오고, 집 전체가 탁 트인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집이 정말 밝아요. 창도 크고요. 처음 이 집에 발을 들였을 때 ‘여기서 살아야겠다’고 확신하게 만든 결정적 포인트가 있었나요?

무엇보다 룸메와 생활 공간이 자연스럽게 분리된 구조라 서로의 리듬을 잘 지킬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바로 옆에 성북천이 흐르는 것도 큰 매력이고요. 그래서 집을 본 그날 거의 바로 “여기서 살자!”고 결정했어요. 밖에서 보이던 큰 창을 보면서 ‘여기엔 뭐 걸어두자’ 같은 상상도 벌써 하고 있었고요. 그렇게 시작된 집인데, 1년이 지난 지금은 그 창에 팔레스타인 국기가 걸려 있어요.

동료와 같이 사는 것도 꽤 특별한 선택이잖아요. 두 분의 케미는 어떤가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같은 느낌일까요?

그런 느낌은 아니에요. 오히려 적당히 거리감이 있는 편이죠. 며칠 동안 서로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카톡으로만 대화할 때도 있어요. 같은 집, 바로 위아래에 있으면서도요. 입주 첫날에 저희가 했던 일도 좀 특이했어요. 각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소리를 질러보는 거예요. 어느 정도 음량까지는 서로에게 안 들리는지 확인하는 소음 테스트였어요. 이후엔 손님 데려올 때만 미리 말하는 정도의 룰을 지키고 있어요.

룸메이트로 지내면서 어떤 분위기나 리듬으로 함께 살고 있나요?

서로의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섞이는 장면이 많아요. 제 친구가 오면 룸메도 내려와서 밥 먹고, 룸메 친구가 오면 저도 올라가 차 마시고요. 작은 파티나 모임이 자주 열리는 구조예요. 각자 방은 분리되어 있지만, 인간관계는 자꾸 뒤섞이는 집. 가끔은 ‘차고래’라고 부르는 시간이 있어요. 술고래처럼 둘이 차를 계속 마시면서 수다를 끝없이 떠는 시간. 여유가 맞을 때면 그런 시간을 오래 가지고, 안 맞을 때는 그냥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리듬대로 지내고요. 그런 감각이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어떤 글에서 이 집을 ‘캣타워’ 같다고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룸메이트와 함께 지내는 구조가 창작에도 많은 영향을 줬을 것 같은데요.

동료랑 같이 산다는 게 주는 안정감이 있거든요. 혼자 있는 것 같다가도 ‘조금 있으면 룸메가 들어오겠지’ 이런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져요. 둘 다 퀴어 작업자이다 보니, 그녀가 작업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요. 창작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협업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공연을 올리는지, 그게 늘 궁금했던 편이라서 더요.

저는 원래 ‘처음부터 창작자가 되어야지’ 하고 살던 사람이 아니었고, 한국에서는 미대 출신이 아니면 예술 분야로 들어가기 어렵다고 느끼잖아요. 저도 그 벽을 늘 의식했어요. ‘회사를 다니다가 갑자기 예술가가 될 수 있나?’ 같은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주변 창작자들과 살아보니까, 그들이 일하는 방식 자체가 제게 큰 배움이 되더라고요.

금개는 작가이자 기획자, 진행자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사는데요. 금개처럼 사는 비결이 있을까요? 스스로 삶을 유지하는 방식이랄까, 그런 게 궁금해요.

일단 저처럼 살고 싶다면, 저처럼 살지 않는 걸 추천드리고요(웃음). 진짜로 생각해보면, 제 삶을 유지하게 해준 건 결국 친구들에게 잘 부탁하고, 친구들에게 잘 기대는 능력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선 장점이고, 어떤 면에선 민폐일 수도 있는데, 이 방식으로 꽤 오래 버텨온 것 같아요. 저는 혼자 있으면 진짜 많은 걸 놓치고, 불안정해지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나 힘들다, 도와줘” 이런 말을 되게 쉽게 해요.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데, 저는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러워요. 물론 미안함도 있어요. 미안하다고 말도 자주 하고, 고맙고, 사랑한다고도 표현하려고 하고요.

굉장히 열려 있는 태도네요. 친구 관계도 그렇고요. 마치 책 <적정 코미디 기술>처럼 누군가를 웃기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도 큰 사람처럼 느껴져요.

사실 코미디도 저는 교육의 도구라고 생각해요. 오픈 마이크나 코미디 공연 중에는 특히 이성애자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잖아요. 그런 자리에서 제가 레즈비언 개그를 하면, 퀴어라는 존재나 퀴어적인 농담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그걸 알려주는 역할이 되거든요.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게 결국 소통이니까요. 내가 어떤 식으로 말해야 이 사람들에게 닿을까, 그걸 실험해보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관객들이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새롭게 알게 되는 순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코미디가 그 역할을 하기에 좋은 장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앞으로 어떤 작업자로 살고 싶은지, 지향점이 궁금해요.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요. 혼자 하는 작업도 물론 중요한데, 제가 진짜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들은 친구들과 뭔가를 만들 때거든요. 그리고 제일 큰 바람은 “쟤랑 같이 일하면 안전해.”라는 신뢰를 주는 창작자가 되고 싶어요. 그동안 저는 애정 기반으로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었거든요. “나 너 좋아해, 나 좋아해줘” 같은 마음으로 활동을 해왔다면, 이제는 신뢰를 만드는 방식, 크레딧을 정확히 나누고, 책임질 건 책임지고, 협업에서 필요한 역할을 잘 해내고, 비밀도 지키는 ‘어른스러움’을 갖추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남자라서 그런지 ‘여자들의 우정’이 늘 궁금했어요. 제가 경험한 세계밖에 모르니까요. 동성 친구들과의 관계도 결국 사랑, 경쟁, 혹은 미묘한 시기 같은 게 밑바탕에 있을텐데요. 그런 게 작동하는 방식이 분명히 있는데, 여자들의 우정은 어떤가요?

저도 그 텐션들이 사실 잘 구분이 안 돼요. 친해지고 싶은 건지, 같이 작업하고 싶은 건지, 멋있어서 가까이 있고 싶은 건지, 아니면 성적인 긴장감이 있는 건지, 이런 감정들이 되게 섞여 있거든요. 그래서 평소엔 막 아무 말이나 주고받고 가벼운 친구처럼 지내다가도, 막상 뭘 부탁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되게 긴장돼요. 그 모든 게 뒤섞여서 우정인지, 동료애인지, 동경인지 구분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여자의 우정’이라고 딱 잘라 경험을 설명하기가 어렵고, 제 우정은 늘 친밀감, 작업, 권력, 욕망, 동경이 뒤섞여 있는 관계들인 것 같아요. 그 복잡한 텐션 속에서 관계가 굴러가고요.

이 집의 캣타워 같은 구조가 결국 일상의 관계에서도 계속 등장하는 것 같아요. 친밀함과 거리감, 영향과 독립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살아가는 감정 말이에요.

맞아요. 요즘 저의 과제는 이거예요. 동료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신뢰를 잃지 않고, 동시에 독립된 창작자가 되는 것. 인간적으로는 그냥 친구들에게 잘해주고 싶어요. 예전엔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너무 중요했거든요. 재밌어 보이고, 같이 있고 싶은 사람처럼 보이고, 그런 외부 시선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반대예요. 책을 쓰는 동안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고,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친구들에게 잘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근데 그게 또 어려워요. 잘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매번 고민하게 되는 거죠.

금개

Big Issue Korea Vol. 342

글: 정규환

사진: 김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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