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이 언젠가 빛을 바래도

2026년 03월 20일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떡국을 앞에 두고 있으면 만든 사람의 취향이 보여요. 만두나 굴을 넣는 사람, 중간에 계란물을 푸는 사람, 다채로운 고명을 올리는 사람도 있지만, 제 친구의 떡국엔 반드시 노란색 지단이 들어가요. 그리고 무엇보다 국물이 우유처럼 맑고 깨끗해요. 음식의 맛도 중요하지만 동그랗고, 하얗고, 정갈한 이 음식을 보면 이 완전한 상태를 위한 보이지 않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새삼 느낄 수 있어요. 미술가가 만드는 요리는 특별한 킥이나 맛 이면에 숨겨둔 의미가 있겠다는 상상을 하다가 문득 오늘 떡국을 먹기로 한 것도, 크림색으로 색이 바랜 하얀색 벽지도 어쩌면 모두 사연이 있을 거라고 헤아려보았습니다. 오늘은 가양동에 있는 장원의 생활 공간이면서 작업실의 역할을 하는, 스튜디오 같은 집에 가보았습니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마음이 움직였던 순간이 있었어요?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가 늦가을이었는데, 아파트 단지 화단에 모과나무가 있거든요. 때마침 열매가 한창 열려 있었고, 향기가 정말 좋았어요.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 장면 때문에 이 동네에 대한 이미지가 확 좋아졌던 기억이 나요.

그때 처음 느꼈던 가양동의 분위기랑, 실제로 살아보면서 느낀 모습은 닮아있나요?

여기는 이상할 정도로 낭만적인 순간들이 있어요. 분위기는 예스러운데, 그렇다고 생명력이 사라진 동네는 아니에요. 단지에 유모차 끌고 다니는 신혼부부들이 정말 많거든요. 문을 열어두면 아이들이 꺄르르하는 소리가 들려요. 오래된 아파트 단지는 대체로 연령대가 높잖아요. 놀이터에 있는 철봉이나 운동기구를 실제로 어르신들이 써요.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여름이 되면 달리기를 하고요. 아파트의 오래된 느낌과 살아 있는 기운이 같이 남아 있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지금 집을 보면 하얀색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요, 처음 이 집에 이사왔을 때랑 비교하면 많이 달라진 편인지 궁금해요.

많이 바뀌었어요. 벽은 전부 제가 다시 칠했고, 배선도 정리하고, 조명도 전부 갈아 끼웠고요. 조금씩 손을 보면서 전체를 최대한 하얀색으로 맞췄어요. 자세히 보면 전부 흰색 계열인데, 재질이 달라서 어떤 건 크림색으로 바래 있고, 어떤 건 조금 파랗게 보이기도 해요. 그렇게 조금씩 달라진 색감까지 포함해서, 지금의 집이 된 것 같아요.

많은 색 중에서 하얀색으로 맞추게 된 건 어떤 기준 때문이었어요?

색 맞추는 게 귀찮아서요. 마음만 먹으면 알록달록하게도 할 수 있지만, 하얀색은 그런 선택을 계속 안 해도 되는 색이에요. 호환성이 좋다고 해야 하나요. 색이 바랬을 때 복구하기도 쉬워요. 표백도 쉽고요. 반대로 빨간색이나 진한 색이 여러 개 섞여 있으면, 한 번 바래면 다시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어디가 더러워졌는지도 바로 보이는 것도 좋고요. 관리하기 쉽다는 점이 제일 큰 이유인 것 같아요.

하얀색 이야기하다가 떠오른 게, 사실 오늘 제가 장원님 집에 온 게 떡국 모임 때문이잖아요. 매년 연초에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떡국을 먹는다고 들었는데, 그 모임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미술 하다가 만난 사람이나,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제 마음대로 분류해서 서너 팀으로 나눠 불러요. 밖에서 사람 만나면 많이 지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차라리 집으로 사람들을 부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새해이기도 하니, 집도 한 번 제대로 치우고, 밀린 청소랑 빨래도 하고, 먼지도 털고 그러면 여러모로 좋잖아요. 매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저 나름의 새해맞이 방식이 됐어요.

그럼, 떡국을 준비할 때도 나름의 원칙이 있어요?

저는 사실 요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떡과 육수도 다 사서 쓰고, 반찬도 거의 다 사요. 대신, 계란 지단만큼은 제가 직접 부쳐요. 명절 모임이라는 게 원래 좀 리추얼 같은 게 있잖아요. 그냥 밥 한 끼라기보다는, ‘잘 지냈어?’ 하고 안부를 묻는 자리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최소한 그 시간만큼은 조금이나마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혼자 먹을 때는 정말 대충 먹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을 초대할 때는 그보다는 훨씬 신경을 써요. 그릇도 일부러 예쁜 걸로 꺼내고요.

익숙한 관계보다 느슨함이 주는 안도감이 또 있잖아요. 다정하게 사람들을 챙기면서 모임을 이어오게 된 데에는, 어떤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 같아요.

직장인으로서 제가 HIV/AIDS 예방 센터에서 일하면서 또렷하게 느끼는 게 있어요. HIV 바이러스 자체나,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자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로요. 문제는 그 정체성들이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는 데 있어요. 외로움을 해결하려면 주변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경로가 한정적이에요. HIV 감염인으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은 자조모임이나 상담센터 정도잖아요. 근데 선택지가 너무 적다 보니까, 거기에 과도하게 기대게 되더라고요.

맞아요. 외로움은 어떤 사건이 아니라 일상에서 조금씩 쌓이는 감정이잖아요.

그럴수록 무의식적으로 연인이나 가족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기대하게 돼요. 근데 사실 한 사람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잖아요.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과, 정서적인 힘듦을 다 받아줄 수는 없어요. 기대가 커질수록, 결국 다시 외로워지기 쉬워요. 그래서 저는 한 사람이 자기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여러 개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서적인 출구가 여러 방향으로 나 있는 게 외로움을 견디는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정서적인 출구가 여러 개 필요하다는 생각이, 이 집에서는 더 또렷해지는 것 같거든요. 집이 생활 공간이기도 하고 작업실이기도 하다 보니, 작가로서의 나와 사적인 나 사이의 거리는 이 집에 살면서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해져요.

한때는 그 간격이 꽤 컸어요. 밖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내가 너무 달랐어요. 밖에서는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었어요. 특히, 외모만이 아니라 작업도, 태도도, 다 잘 굴러가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고요. 그러다 보니 짜증을 정말 많이 냈어요. 밖에서는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다가, 집에 오면 그 예민함에 지쳐서 완전히 늘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차이가 점점 좁혀졌어요. 예전에는 밖에서는 극도로 예민하고 집에서는 완전히 풀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대충 예민하고, 대충 늘어져 있어요. 그 간격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이게 꽤 좋다고 느껴요.

집이랑 작업실이 한 공간이 되면서, 생활 리듬이나 작업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그런 환경은 어떤가요?

남자친구는 제 몸이 나빠질까 봐 걱정해요. 제 집에는 이런 것도 있어요. 화학 성분까지 걸러주는 방독 마스크인데, 등급도 꽤 높은 거예요. 이런 것까지 쓰면서 작업을 하는데도, 워낙 걱정이 많은 친구라 계속 신경을 쓰죠. 그런 걱정 말고는 사실 별일은 없어요. 작업이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요. 오늘 안 되면 내일 되겠지 싶고, 오늘 잘 되면 내일도 잘 됐으면 좋겠지만 또 안 될 수도 있겠죠.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순간이 훨씬 많아진 것 같거든요. 집에서 작업하다 보면 그런 생각들은 주로 언제, 어떤 식으로 떠오르나요?

사실 지금 구상하고 있는 작업도 확실히 집에서 영향을 받았어요. 생활 공간 안에 있으니까 생긴 생각이에요. 집이랑 작업실이 거의 같아지다 보니, 예전에 했던 작업들이 그대로 베란다에 다 쌓여 있거든요. 근데 가만히 보면 그게 무슨 쓸모가 있나 싶어요. 전시장에 있을 때나 의미가 있지, 집에서는 사실 아무 쓸모도 없잖아요.

그래서 작업의 크기나 형태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나요?

작업을 좀 작게 만들고 싶어졌어요. 예전 작업들은 꽤 컸거든요. 이제는 굳이 그렇게 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은 액자는 벽에 걸 수도 있잖아요. 앞으로는 A4 정도 크기로 하려고 하고요. 집에서는 오브제처럼 세워둘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벽에 걸 수도 있게요. 보존하기도 쉬워지는 것 같아요. 이번에 쓰는 재료도 딱딱하고, 습기에 영향을 덜 받고, 빛이 바래도 괜찮게 보일 수 있는 걸로 골랐어요.

최근 작업에 직접적인 힌트가 된 생각이나 이미지가 있다면, 어떤 거예요?

청사진을 영어로 블루프린트라고 하잖아요. 예전에는 기록을 남길 때도 쓰였고, 동시에 미래를 계획할 때 설계도로도 쓰였어요. 그러니까 청사진이라는 게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가리킬 수 있는 매체인 셈이죠. 저는 그 청사진 위에 여러 가지 이미지를 기록하려고 해요. HIV 감염인이나 성소수자, 여성 등 여러 사람들이 자기 과거의 사진을 보내주거나, 혹은 자신이 바라는 어떤 이미지나 희망 같은 걸 보내주면, 그걸 제가 청사진 위에 기록하는 거예요. 그렇게 만들어진 청사진이 레진 안에 들어가고요. 과거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미래를 향해 있는 물건이 되는 거죠.

여기까지 오기까지, 꽤 오래 고민해 온 흔적이 곳곳에 느껴져요.

제가 생각하는 인생의 목표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예요. 특별히 좋아야 되지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요. 고민했다거나 노력했다는 말조차 필요 없어지는 상태. 그 미래가 올 때까지 제 작업들이 잘 보관되기를 바라면서,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과 생각을 미래로 보내는 게 지금의 제 작업이에요.

최장원

Big Issue Korea Vol. 345

글: 정규환

사진: 김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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