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의 온도

2026년 01월 28일

자주 가는 동네를 지나다 보면 이 집엔 누가 살고, 저 집엔 누가 살았는지 기억을 더듬게 됩니다. 마치 유년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친구의 집은 그 존재만으로도 안심이 돼요. 어른이 되고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게 되면서, 동네를 걸으며 친구의 집을 보고 안부를 떠올리던 감각은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그런데 행운인지,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후암동에 사는 친구의 집을 인터뷰를 한 게 어느덧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덕분에 만나기로 한 친구의 집을 가기 위해서 골목길에서 방향을 꺾을 때 마다 익숙한 집이 나와서 외롭지 않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의 말대로라면, 이 동네에서 친구를 사귀면 적어도 고독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오늘은 후암동에 있는 민섭의 집에 가보았습니다.


후암동에서 세 번째 집이라고 들었어. 먼저, 이 집으로 오게 된 이야기를 들려줘.

사실 전에 살던 집에 대한 애착이 정말 컸어. 처음으로 제대로 꾸민 집이었고, 그 집에서 일이 잘 풀리기도 했고. 그런 감정들이 다 묶여 있으니까 쉽게 떠나기가 어려웠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색이 오히려 휴식을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었어. 거실은 핑크, 주방은 주황, 안방은 초록, 막상 그 안에서 쉬는 느낌이 잘 안 드는 거야. 새로운 집을 찾을 때는 좀 더 여유 있고 탁 트인 느낌, 그리고 전체적으로 화이트톤의 집이면 좋겠다는 기준을 세웠어.

집에 대한 기준도 꽤 까다로웠을 텐데 결국 잘 맞는 집을 찾았잖아. 집을 찾는 너만의 비결이 있어?

집 보는 과정 자체를 굉장히 좋아해. 후암동에서 오래 살다 보니 동네 부동산 사장님들과 친해졌거든. 그중 가장 친한 사장님에게 가면 집을 직접 ‘골라보라’는 식이야. 보통은 중개인이 몇 군데만 추천하잖아? 그런데 그 사장님은 나를 자기 자리 옆에 앉혀서 “보고 싶은 집 있으면 다 골라요.” 그러면 내가 평수, 건물 형태, 옵션 등을 필터링해서 집 네다섯 개를 추려. 그리고 바로 연락해서 스케줄 잡고, 오토바이를 타고 한 시간 동안 4개의 집을 훑어보는 거지.

그렇게 집 고르는 과정 자체를 좋아하는데도, 이 집은 어떤 점에서 바로 결정하게 됐어?

웃기지만, 내가 쉴 공간보다도 사람들이 와서 즐길 공간을 먼저 떠올리며 집을 고르는 편이야. 이 집은 넓고 시원하게 트여 있어서, 딱 보는 순간 ‘아, 이 집이면 파티를 열어도 괜찮겠다’ 싶었어. 거실도 넓고, 안방도 유독 크잖아. 보통 이 면적이면 방을 세 개로 나누는데 여기는 두 개뿐이라 각각의 방이 훨씬 커. 특히 지금 서재 겸 침실로 쓰고 있는 방은 정말 넓어서, 파티할 때 거실과 나눠 앉아도 충분하겠다는 그림이 바로 그려졌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집이 단순히 개인적인 공간이라기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장소처럼 느껴져. 그렇게 집을 몇 번 옮겨 살면서, 집을 대하는 태도나 기준도 조금씩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어때?

‘이 집 참 예쁘다’ 하고 찍어둔 전 집 사진들을 보면 어설픈 부분이 정말 많거든. 그때는 그게 최선의 취향이고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아직 덜 다듬어진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다 보니까, 지금 살고 있는 공간도 앞으로 분명 더 발전할 거라는 확신이 생겼어. 내 취향이 더 단단해지고, 계속 나를 닮은 집에 가까워지는 과정이겠지. 자연스럽게 ‘앞으로는 어떤 공간에서 살게 될까?’하는 기대감이 생기는 것 같아.

취향이 점점 선명해지는 중인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인테리어 그렇고 옷도 그렇고 평소에 컬러를 꽤 과감하게 쓰잖아. 색을 보면 직관적으로 확 끌리는 편이야?

내 추구미는 흔히 말하는 단정하게 꾸미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야. 옷을 입을 때도 그렇고, 컬러로 포인트 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옷은 자기 표현의 연장이잖아. 겉으로는 단정해 보이는데, 노란 셔츠 하나가 눈에 띈다든지, 독특한 패턴이 과감한데 또 나랑 잘 어울린다든지, 그런 식으로 기억에 남는 표현이 좋더라고. 아마 그런 욕망이 있는 것 같아. 누군가에게 ‘아, 그 사람 스타일 참 특별하다’라고 남고 싶은 마음.

자연스럽게 집은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해져. 집을 꾸민다는 건 너한테 어떤 일이야?

집도 옷처럼 자기표현의 연장이라고 생각해. 어떤 사람에게 집은 ‘오롯이 나만 편하면 되는 공간’일 수 있지만, 나는 조금 달라. 나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자주 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나를 기억하는 요소 중 하나가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래서 집을 꾸밀 때도 늘 그걸 상정하고 있어. 이 공간이 나를 어떻게 보여줄지, 사람들이 어떤 기분을 느낄지.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내가 옷에서 표현하던 색감이나 포인트들이 자연스럽게 집에도 스며든 것 같아.

그래서 그런지 거실에 딱 들어오자마자 한가운데 놓인 이 원형 테이블에 시선이 가더라.

처음 이 집을 꾸밀 때부터 큰 원형 테이블을 꼭 들이고 싶었어. 직사각형 테이블은 사람들이 많이 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누군가는 중심에서 멀어져 대화에서 소외되기 쉬워. 그런데 원형 테이블은 모두가 가운데를 향하게 되고, 시선도 자연스럽게 모이니까 다같이 이야기하는 분위기, 평등하게 소통하는 구조가 만들어져.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편하게 섞이고, 누구도 외톨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이 원형 테이블을 선택했어.

원형 테이블 얘기를 듣다 보니까, 민섭은 집을 ‘보여주기 위한 것’보다는 사람과 이야기를 중심에 두는 것 같아. 그래서인지 흔히 말하는 집 자랑이랑은 좀 다른 결이 느껴진달까.

나는 집을 소개할 때 “이거 어느 브랜드예요.” 이런 식의 자랑이 아니라, ‘이 벽은 내가 직접 칠한 거야’, 이 색 고르느라 진짜 고민 많이 했어‘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그러니까 ‘취향을 보여준다’가 아니라, 내가 손으로 해보고, 고민해서 고르고, 과정 속에서 만든 것들이 나한테는 더 뽐내고 싶은 포인트야. 그런 태도가 나한테는 훨씬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느껴져. 이런 방식이 손님들과 얘기할 거리도 많고. 결국 나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 이야기가 많은 집을 만들고 싶은 거 같아.

그런 맥락에서 얼마전 생일 파티를 집에서 열게 된 계기도 궁금해.

20대 초중반에 정말 바쁘게 살았거든. 군 제대 이후에 요리 학교를 다니고, 요리사로 일하면서 하루 12시간씩 근무했어. 그런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을 챙기는 시간이 전혀 없더라고. 심지어 생일까지도. 그래서 요리를 그만둔 해의 생일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거야. ’이제는 나를 좀 돌보고 싶다‘ 그 마음으로 생일 파티를 스스로 열었어. 그때 친구가 열댓 명 정도 왔나? 근데 그 경험이 너무 좋은 거야. 열심히 사느라 놓쳐왔던 ‘나를 위한 시간’을 드디어 만들어낸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 나를 보러 와서, 나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어색함을 풀어가는 모습들이 너무 재미있었어.

그날 돌이켜보면, 평범한 생일 파티라기엔 사람이 꽤 많이 왔잖아. 거의 행사 느낌이었는데, 이 정도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만드는 너만의 방식이 있는 건가 싶더라.

이번 생일 파티엔 한 70명 가까이 왔어. 근데 내가 인맥 관리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진짜 한 번도 없어. 생일 때만 보는 친구들도 많고, 자주 못 보는 친구들이 절반 정도 될걸? 그래서 인맥 관리라기보다는 그냥 친구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난 그 사람이 나를 조금 궁금해했으면 좋겠고, “저 사람이랑 더 친해지고 싶다” 이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어. 그러려면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고, 그 안에서 내 매력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집, 일, 그리고 사람 관계까지 전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는 느낌이야. 민섭의 입장에서 지금 이 모든 것들은 어떻게 연결돼 있다고 느껴?

나는 진짜 이 동네를 사랑하거든. 특히 후암동을 엄청 좋아해. 그래서 그런지 지금 후암동에서 알고 지내는 가구 수만 해도 거의 스무가구는 될 거야. 내 절친들이 하나둘 이 동네로 오고, 또 그 친구들이 다른 친구를 소개하고 그러다 보니까 진짜 작은 ‘타운’ 같은 게 형성됐어. 맨날 같이 놀고 교류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 믿음이 쌓여 있는 소규모 공동체 같은 게 있어.

사실 이 인터뷰 하면서 느낀 게, 후암동에 사는 친구들이 참 많이 등장하더라. 후암동에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서 좀 신기했어. 다 각자 살고 있는데도, 묘하게 연결돼 있는 느낌이 있고.

맞아. 그렇다고 우리가 단톡방 하나에 다 들어가 있어서 매일 대화를 나누는 그런 형태는 아니거든. 오히려 느슨한데, 공간적으로 단단하게 연결된 관계에 더 가까워. 모두가 각자 삶을 살고 있지만, 필요할 때 손을 뻗으면 언제든 닿는 거리 안에 있는 사람들. 그런 안정감 같은 게 있어. 그리고 생각해보면, 내가 일하는 방식, 집에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 이 동네에서 쌓는 네트워크까지 전부 느슨하지만 확고하게 하나로 이어져 있더라고.

듣고 있으면, 혼자 사는 건 맞는데 완전히 혼자는 아닌 것 같아.

예를 들어 한 친구는 며칠 전에 “나 집을 일주일 비워야 하는데, 딸기를 밖에 두고 나온 것 같아, 혹시 가서 봐줄 수 있어?” 이러면서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더라. 그래서 내가 가서 확인해준 적도 있고. 나한테는 “감이 너무 많아서 나눠 줄게.” 하고 갑자기 과일 들고 오거나, 반대로 누가 새벽 1~2시에 “나 집 열쇠 두고 나왔어. 도어락도 안 열리는데 지금 너네집 가도 돼?”라고 연락 오는 일도 있어. 이 정도면, 고독사는 안 하겠다 싶더라고.

진민섭

Big Issue Korea Vol. 343

글: 정규환

사진: 김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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