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치앙마이

2026년 07월 14일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 정확히는, 버릴 이유는 충분한데 끝내 남겨두고 마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없어도 되는 것들인데, 그 안에 추억이 붙어 있어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고요. 현경은 그것을 ‘추억이 있는 쓸데없는 물건들’이라고 부릅니다. 소중한 것은 물건 자체라기보다, 그 시절의 마음이나 장면에 더 가까운 셈이죠. 그녀가 오래 해온 일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일입니다.

평소 책을 기획하고, 북페어를 만들고, 동시에 디자인 작업을 이어갑니다. 보이지 않는 생각과 분위기를 화면 위로 끌어올리고, 누군가의 말과 이야기를 눈앞에 놓을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일. 그것은 기술이기도 하지만, 루틴에 가까워 보이기도 해요. 그래서 어쩌면 그녀의 주변에는 추억이 있는 쓸데없는 것들이 자꾸 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사소해서 더 오래 곁에 머무는 것들. 버려지지 못한 물건들은 단순한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것들에 스민 이야기를 계속 보이게 만드는 일과, 쉽게 버려지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경의 집에 가보았습니다.


이 집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궁금해요.

성신여대 근처에 작업실이 있었어요. 그때 성북천을 따라 자주 걸었는데, 이상하게 이 동네가 좋다는 생각을 오래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이 집을 처음 봤는데, 특히 저 아치형 구조가 마음에 들었고요. 사실 저는 서울을 늘 떠날 궁리만 했어요. 사람이 너무 많고, 다들 바쁘고, 누군가는 늘 화가 나 있는 것 같고. 그런데 이 동네에 발 붙일 친구들, 마음 붙일 사람들이 생겨서 여기에 살게 된 것 같아요.

집을 둘러보다 보니 가구는 왜 이렇게 배치했을까 궁금해졌어요. 소파도 없고 TV도 없고, 대신 큰 테이블이 중심에 있잖아요.

이 집에 오기 전부터 하나는 분명했어요. ‘가운데 큰 테이블을 놓아야겠다’는 생각이요. 친구들이 와글와글 모이는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이전 집에는 긴 소파도 있고 TV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구도가 싫더라고요.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TV를 보는 방식이요. 이 집에는 TV도, 소파도 없어요. 대신 이렇게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는 구조를 더 좋아하게 됐어요. 친구들이 오면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고, 술 한잔하기도 하고요. 집이 누군가 잠깐 들렀다 가도 자연스러운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근에 개인 작업실도 있는데, 그 공간이 생활과 일에는 어떤 영향을 주나요?

작업실에도 커다란 테이블이 하나 있어요. 작업실도 집처럼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공간이었으면 했거든요. 그 공간을 중심으로 여러 활동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집도 비슷해요. 친구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와서 같이 밥을 해 먹고, 파티를 하기도 하고, 제철 채소를 나눠 먹기도 해요. 생각해보면 저는 공간을 혼자 쓰기보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꾸려가는 편인 것 같아요.

집과 작업실이 묘하게 비슷하게 연결된 느낌이 드는데, 현경님의 하루 리듬도 궁금해졌어요. 일과 생활은 어느 정도 분리되는 편인가요?

사실 보시다시피 잘 분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눈을 뜨면 반려견 오월이를 데리고 작업실까지 걸어가요. 대충 씻고 천천히 걸어가서 일을 시작합니다. 가는 길에 꽃도 보고, 풀도 보고, 물도 보고, 오리도 보고요. 저는 오히려 그 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보통 점심쯤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일하게 되고요. 작업실에 있다가 ‘이제 더는 못 있겠다’ 싶으면 집으로 돌아와 다시 작업을 해요. 저녁이 되면 집에 와서 술도 한잔하고, 남은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루가 흘러갑니다.

이 집에서 특히 ‘나답다’ 싶은 물건을 몇 개 꼽는다면요?

친구들이랑 경남 남해에 갔을 때 데려온 말 인형이 하나 있어요. 거기에 ‘치앙마이에서 온 말’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제가 태국 치앙마이를 몇 번 갔거든요. 추위를 정말 많이 타는데, 겨울에 집에만 있는 게 싫어서 한 달 반 정도 편도로 머물다 오기도 했어요. 그렇게 몇 번 오가다 보니 그곳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 정말 많이 생겼습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았어요. 나중에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코쿤카》(웜그레이앤블루 펴냄)라는 책을 만들 정도였고요.

현경 님에게 치앙마이는 어떤 곳이었어요?

무엇보다 치앙마이에는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있어요. 실제로 엄청 많은 걸 할 수 있는 도시도 아니거든요. 이상하게 그게 좋았어요. 낮에는 잠시 일하고, 밤에는 친구들이랑 놀고. 조금 느슨하게 살아도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괜찮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다가 정신 건강에 대해 토론하기도 하고, ‘왜 한국 사회는 이렇게 숨 가쁠까’ 같은 이야기를 오래 나누기도 했어요. 그런 대화들이 저한테는 꽤 중요했던 것 같아요.

치앙마이가 단순히 쉬러 가는 곳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여행 갔다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오히려 한국을 조금 돌아보게 되는 장소 같은 느낌이 들어요.

실제로 가보면 퇴사하고 온 사람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래서 농담처럼 ‘퇴사자들의 성지’라고도 불리고요. 여기서 뭔가를 다시 찾아 나갈 수 있을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같은 이야기를 밤늦게까지 자주 나눴던 기억이 나요.

‘쓸데없는 물건’ 이야기를 했잖아요. 오늘 인터뷰 하기 전에 사실 청소를 할 여유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토로했지만, 평소에도 물건을 쉽게 못 버리는 편인가요?

제 집에 있는 물건들은 거의 다 애매해요. 이사 온 지 1년이 됐는데도 아직 저 방 짐 정리를 다 못 했거든요. 친구들은 늘 말해요. “1년 동안 안 열어봤으면 필요 없는 거다. 그냥 버려라” 하고요. 그런데 저는 서랍을 한번 열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이 크레파스는 언제 어디서 썼던 거지?” 하면서요. 물건마다 다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쉽게 못 버리겠더라고요. 예를 들면 여기 있는 헬로키티 장난감도 되게 애매한 물건이에요. 집들이 선물로 받은 건데, 주신 분 말로는 “친구들 오면 이런 거 하면서 놀아라.”였어요. 그런데 솔직히 저랑 너무 안 어울리는 물건 같거든요. 그렇다고 또 버리지는 못하고요. 결국 그렇게 애매한 것들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단순히 취향의 문제는 아니네요. 디자이너라면 집도 잘 정돈돼 있을 거라고 쉽게 상상하게 되는데, 오히려 그런 애매함이 조금 색다르게 들려요.

취향이라기보다 성격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는 일을 정말 열심히, 잘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거든요. 주변에서는 저를 보고 일을 꾸준히 잘 해나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저는 그만큼 삶을 잘 지탱하지 못하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집이 늘 이 모양이기도 하고요. 선물 받은 거라 버리기 애매하고, 그렇다고 잘 쓰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다 보니 자꾸 쌓이죠. 정리를 못하는 게 단순히 게으름의 문제라기 보다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조금 부족해서 생기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혼자 생활을 꾸려가고, 작업실도 운영하고, 결국 자기 삶을 계속 유지하고 있잖아요. 방금 말한 부족함과는 또 다른 힘도 분명 있는 것 같았어요.

생각해보면 치앙마이 이후 삶이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래서 이 동네로 이사 오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치앙마이에서는 햇볕 쬐면서 낮에 그냥 돌아다니고, 특별한 목적 없이 걷는 시간이 많았어요. 사실 그전까지는 그런 걸 거의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성북천에서의 기억도 비슷해요. 친구들이랑 “우리, 어디까지 걸어갈 수 있나?” 하면서 별일 없이 오래 걷곤 했어요. 치앙마이에서도, 성북천에서도 저는 늦은 나이에 산책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법이요. 

그렇게 집에 돌아와 혼자 있는 시간에는 주로 뭘 하세요?

사실 저는 ‘혼자 있음’을 배우는 중인 것 같아요. 혼자서는 뭘 할 수 있을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요. 원래는 사람을 정말 많이 찾아다녔어요. 그래서 요즘은 산책도 하고, 집에서 그냥 가만히 누워 있기도 하고, 시집 같은 것도 읽어요. 다만 아직은 연습하는 단계에 가까운 것 같아요. 가끔 친구들이 “왜 그렇게 사람을 찾아다니냐”라고 물어요. 그런데 저는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혼자 일하거든요. 제가 먼저 누군가를 찾지 않으면 밤까지 계속 혼자예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람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아직은 그 외로움을 다루는 일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도 조금씩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다 정리된 상태에서도 노마드의 삶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꼭 필요한 물건 하나만 고르라면 의자 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요. 지금 집을 보면 의자가 꽤 많아요. 다 합치면 열 개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책도 한 번 다 정리한 적이 있는데, 결국 다시 남는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옷도 비슷해요. 한 번 크게 정리를 했는데도 아직 많아요. ‘이건 언제 입었던 옷이라서 버리기 어렵다’ 같은 생각이 계속 따라붙어요. 물건 자체보다 그 안에 붙어 있는 이야기들이 자꾸 남아서, 정리가 생각보다 어렵네요.

물건보다 추억이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한편으로는 디자이너로서 숙명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계시기도 하고요. 끝으로,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뭐예요?

요즘에는 박상수 시집 <메신저 백>을 늘 들고 다니면서 조금씩 읽고 있어요. 산문시라서 더 그런지, 문장이 중얼중얼 흘러가는 느낌이 있어요. 그 안에 「착한 사람」이라는 시가 특히 좋았어요. “저는 무해하고 아주 달아요. 그렇게 중얼거려 보죠. 마침내 나는 아주 착한 사람이에요.” 특히 “무해하고 아주 달아요”라는 표현이 계속 남았어요. 뭔가 열대 과일 같은 느낌이랄까.

<끝>

현경

Big Issue Korea Vol. 349

글: 정규환

사진: 김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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