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복숭아

2026년 07월 15일

바야흐로 복숭아의 계절이다. 자연히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Call Me by Your Name>이 떠올라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보았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의 이름을 조그맣게 속삭여본다. 몇 해 전, 영화를 처음 보곤 꽤 충격을 받았다(p). 후로 수십 번 영화를 돌려보며 알 수 없는 욕망이 끓어오름을 느꼈고, 그 힘을 발판 삼아 첫 장편소설을 쓰기도 했다. 물론 미완인 채로 남았으나, 소설 속 중요한 장치를 몸에 새길 만큼 아낀 이야기였다. 그렇게 내 왼쪽 허리에는 복숭아 타투가 남았다. 베어 물어 속살이 드러난, 가운데에 씨앗이 선명하게 그려진, 과즙이 줄줄 흘러내릴 것만 같은.

복숭아 타투를 매만지며 한때 만났던 이들 중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때도 칠월이었던가. 미팅을 위해 찾은 카페에서 분명 일 얘기를 나누었음에도 그날 해야 할 일에는 진전이 없었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라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을 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런 눈빛을 모르지 않는 나이였다. 묘한 기류를 충분히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어른이었기에 그와 나는 자연스레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일로 만난 사이를 넘어, 사적인 영역에 발을 걸친 것이다.

자주 그의 집에서 잠을 잤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선선한 방이었다. 침대 프레임 없이 바닥에 깔아둔 매트리스 위에 누워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를 여름 내내 들었다. 나는 셔츠를 입지 않았고 그는 바지를 입지 않았다. 그의 집엔 파자마가 한 벌뿐이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냥 그렇게 지냈다. 그래서였는지 그의 시선은 자주 내 허리춤에 머물러있었다. 내 복숭아를 궁금해했던 것일까.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꼭 그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항상 내 시선 아래에 있던 정수리가 제일 먼저 그려진다. 나를 핥고 깨물고 애지중지하던 사람. 등허리를 손끝으로 쓸며 두 눈 가득 복숭아를 담고 있는 마음이 궁금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애를 통해서 그런 게 사랑의 모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래서 나도 그의 복숭아를 참으로 사랑해 주었을 것이다. 진짜 복숭아가 아닌데도 진짜 복숭아처럼 먹을 수 있는 사람. 그것을 믿다 보면 진짜가 되어서 내 허리에서 단맛이 난다고 말해주던 사람. 내가 가진 양보다 많이 먹어도 아깝지 않던, 없는 것도 끌어 모아다 주고 싶었던 사람. 내겐 복숭아가 없었지만 허리에 복숭아 그림이 있었고, 그에게도 복숭아는 없었지만 그의 몸엔 나만의 복숭아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여름이 깊어 가는 것과 비슷한 속도라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의 선 너머에 마구잡이로 그림을 그렸고 두 사람의 몸이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해 여름이 저무는 것처럼, 복숭아가 과숙해 물러 섞어버린 것처럼 우리 사이도 어느 순간부터 달콤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한참 과거를 떠올리다가 현실로 돌아온다. 흠. 이제 내 허리는 그렇게 탐스럽지 않은 것 같다. 복숭아 타투는 여전하지만 과즙이 흐르는 모양처럼 보이지 않는다. 먹다 버려져 메마른 복숭아 같다. 왜일까. 나도 이제 늙은 것일까. 그러고 보니 손끝이 이전만큼 부드럽지 않고 거칠다. 손가락 마디마디의 주름도 깊어진 것 같다. 나 정말 늙어버린 걸까.

  • 공허한 마음이 허기로 느껴질 때

요즘엔 밤마다 전원을 조망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잠든다. 영상에선 자연의 풍경과 소리가 오래 재생된다. 멀리서 가까운 곳으로. 촬영팀은 시골 생활을 관찰하기 시작하고, 늘 나보다 늙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노동하는 장면을 비춘다. 묻고 답한다. 그러면 나는 궁금해진다. 그들처럼 나도 내 일이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보다 곱절은 힘들어 보이는데도 전혀 그렇지 않다 말하는 얼굴의 선명한 주름 위로 볕과 땀이 흐른다. 반면 시원한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세상 근심 다 짊어진 듯한 내 모습을 나는 어쩌면 좋을까. 나는 나는 어쩌나 정말.

늘 깨끗하게 정돈된 곳, 온도와 습도가 최적의 상태로 유지되는 우리 사무실엔 규환이 나보다 항상 먼저 출근해 있다. 일찍 도착한 규환이 청소하고, 세팅한 에어컨과 선풍기로 쾌적해진 공간에 나는 아무런 노력 없이 몸을 맡긴다. 인사를 나눈 뒤 커피를 내리고, 규환을 조금 구경하다가 오늘의 스케줄을 훑기 시작한다. 할 일이 태산이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일을 해도 해야 할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하루 종일 일을 했는데도 제대로 끝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 나는 울고 싶어진다. 엉엉 울어도 될까.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다. 정신 차려. 규환은 나를 단도리한다. 그러고는 시무룩해진 내게 맥주 한잔하자고 달랜다. 그러면 나는 또 신이 나서 좋다고 그를 따라나선다. 어디 갈까. 뭐 먹을까. 아니 뭐 마실까. 맥주? 소주? 아님 소맥이 나으려나? 하이볼도 괜찮을 거 같고…. 새로 생긴 가게들을 지나치고, 삼각지의 휘황한 간판을 건너 우리는 어김없이 낡은 술집으로 들어선다. 아무래도 노포지. 회사를 벗어났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아쉬운 직장인의 마음으로 규환과 나는 마주 앉는다. 사무실에 있을 때보다 훨씬 직장동료 같은 사이가 되어 술잔을 비워낸다.

규환과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나면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아직 덜 늙은 것 같다. 아직은 그렇게 낡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은 막막했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도 같다. 더 늦기 전에 가야겠지. 막잔을 비우고 일어난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사무실로 출근한다. 날씨가 좋으면 슬렁슬렁 걸어서 간다. 후암동 은행나무를 지나, 남영동 버즘나무를 거쳐 삼각지역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넌다. 폴짝폴짝. 발걸음이 가볍다. 출근이 즐거워서 가벼운 것이 아니라 가볍게 걷다 보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그러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믿자). 죽상을 하고 가는 것보다 퐁퐁 뛰어 가는 게 백배는 나으니까. 선을 넘나들며 사무실로 향하는 길, 느티나무 잎사귀 몇 장이 머리 위로 흩날린다.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책을 펼치니 김현 시인의 문장이 내게로 시원하게 불어온다.

시작, 하면 호호막막한 밤바다를 보고 선 느낌이지만 

시작하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기분.

그의 말마따나 둘은 퍽 다른 말. 자세가 달라지고 태도가 바뀐다.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그의 문장을 따다가 문진 삼아 맘에 꾹 얹어둔다. 그러면 어쩐지 나도 반짝이는 사람이 되는 기분. 내 반짝임을 나눠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렇다면 오늘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 중 하나를 해보아야겠다고, 자 어디 한번 시작해 보자고 다짐하게 되고.

  • 선 밖에 색을 칠하다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면서 없는 시간을 쪼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타인을 만나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내 삶을 긍정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우리가 얽히고설킨 채로 살아가며 어긋나고 겹치다가 자꾸만 선 밖에 칠하고 마는 실수를 용납하는 것은 완성된 관계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진하게 그어진 선들이, 내 삶을 억누르고 지배한 선들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의 씨앗을 심고 그 믿음에 기대어 선들 바깥에 크레파스를 들이밀어 보는 건지도 모른다.

한 사무실을 쓰더라도 우리는 각자 일에 몰두하기 바빴는데 요즘은 규환과 함께 사부작사부작하는 일이 생겨 그와 자주 대면한다. 하나의 일을 두고 대화하는 순간이 잦다. 그럴 때마다 규환과 조금씩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엇나가다가 이상한 지점에서 만나길 반복한다. 이걸 뭐라 부를 수 있을까. 규환이 말한 “2+1”이라 해도 될 것 같다. 그냥 3이 아니라 2+1. 결괏값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 남는 것이 아니라 더해지는 것. 무엇이 될지 모르기에 무한한 빈자리의 영역. 그 “문을 열어두는 자리”의 무궁무진함이 낡은 관계에 계속 바람을 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무궁무진하다란 형용사는 끝이 없고 다함이 없다는 뜻. 아주 좋다. 끝이 없으니 끝까지 가볼 수 있겠다. 끝까지 갈 수 없기 때문에 그 끝을 향해 가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아직도 나는 진정 낡고 늙은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오래된 간판이 굳건한 노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또 해볼 따름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몸이 늙은 게 아니므로. 노포의 간판이 낡은 게 아니기 때문에. 단지, 마음에 녹이 슬고 마음에 곰팡이가 피고 마음에 고인 물이 썩은 것은 아닐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 자조해 보게 된다.

처음으로 선을 지키지 않은 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몸에 복숭아를 새긴 건 분명 내가 넘지 못하던 선들을 넘은 일이긴 했다. 미미하기 짝이 없던 작은 일탈을 사건으로 만들어준 게 지난 관계들일 테고. 그러고 보니 내 허리에 새겨진 복숭아 타투를 사랑한 그 애는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내게 말했다. 아름다웠다고. 나는 그가 무엇에 대해 말한 건지 묻지 않았다. 올해도 여름이 짙어가고, 어김없이 복숭아를 사 왔다. 올해 복숭아 농사가 풍년인지 집는 족족 달다. 잘 익어 맛이 좋을 때 잔뜩 먹어두려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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