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환 씨 나랑 동갑이에요?

2026년 03월 15일

규환과 처음 만난 건 한 페어에서였다. 여느 페어와 달리 아는 이 하나 없이 명동에서 홀로 테이블을 지키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짐짓 태연한 척 사람들을 마주했지만, 속에선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기분을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고 낯선 이들 사이, 묘한 안정감을 느낀 것만은 확실하다. 어떤 연유로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랬던 것일까. 기억나는 건 내 뒤에 규환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과 비슷하게 그때도 규환은 나와 등을 대고 앉아 있었다.

나와 달리 규환 곁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주위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게 내심 부러웠던 것 같다. 힐끔힐끔 그쪽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즐겁구나. 행복하구나. 이쪽의 사정과는 달라 보였다. 나라고 불행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행복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꽤 다른 세계인 것 같은 두 테이블 사이의 연결, 그러니까 먼저 말을 걸어온 쪽은 규환이었다. (나는 늘 ‘그런’ 사람에 속했고,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런” 사람이기에 우리 관계의 첫 단추는 대개 저쪽에서 끼웠다. 다시 말해, 나는 늘 선택당하는 쪽에 있었다.)

후로 종종 규환을 마주치긴 했어도 가벼운 안부를 묻는 사이에 그쳤다. 그러다 그와 저녁 약속을 잡았다. (어쩌다? 아마도 규환의 제안이었을 테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삼각지의 작은 오뎅바였는데, 좋을 호(好)가 나란히 붙어 ‘호호’라는 이름을 한 따듯한 가게였다. 그날 밤 규환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며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올렸다. 3년쯤 전의 일이다.

“한자를 배우던 어린 종길은 그 모양과 뜻을 골똘히 바라보곤 했다. 글자를 뜯어보면 삶의 이치 같은 것을 엿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의 다 잊었으나 이따금 어느 시절은 좋은 이야깃거리가 된다. 오늘 만난 ‘좋을 호’는 여자와 남자가 나란히 붙어있다. 사랑이나 아름다움을 뜻하기도 한다. 같은 글자를 두 번 반복해 사이좋은 이야기를 지어낸다. 어른이 된 종길은 아직 삶의 이치를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오래 붙들어 고민하고 문장을 짓는다. 사람과 사람이 기대고 모여 이뤄낼 내일을 꿈꾸며.”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현재의 나는 그날 적은 문장과 얼마간 가까운 삶(사람)이 되긴 하였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일군 매일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 틈에서 비져나온 기쁨에 웃곤 하니까. 규환과 함께 저녁을 먹은 뒤, 그와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된 듯했다. 내적 친밀감이 부쩍 커진 것이다. 이제는 알고 있다. 그런 게 우정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작년 봄 제주에서 규환의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우리가 정말로 한 공간을 공유할 줄은 몰랐는데, 어느덧 사무실에서 사계절을 보았다. 규환과는 사무실에 앉아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동료이자 친구라 가능한 일일 터. 아무튼, 규환과 대화를 하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나만 아는 한때의 추억이거나 아직은 선명하지 않은 무형의 일들이다. 그럴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입을 닫고, 각자의 속사정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나는 그러하고, 규환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꼭 긴긴 랠리가 이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그 시간을 참 좋아한다.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이 있다가도 차분하게 정비를 하는, 마치 이상한 룰이 적용된 운동경기 같달까. 하긴 우리 모두 주어진 삶이라는 경기를 해내는 중이기도 하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겠다.

규환은 나보다 일찍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람이다. 겨울에는 작은 공간에 온기를 채워두었다가 차를 끓여주고,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보다 반가운 그의 웃음이 퐁퐁, 테이블 위를 뛰어다닌다. 혼자인 사무실에서 그는 어떤 시간을 보낼까. 그가 앉은 하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채색의 사무용품들을 바라보지만 당연하게도 말이 없다. 규환은 사무실 인근 수영장에 다니고, 다니고… 음… 규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규환은 양파 같은 사람인 걸까. 까도 까도 새로운 면이 드러나는?

좋은 일 옆에 좋은 일이, 좋은 마음 옆에는 좋은 마음이, 좋은 사람 옆은 좋은 사람이 나란히 놓이기 좋다. 규환과 삼각지 사무실에서 보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좋을 호 옆에 좋을 호를 하나 더 쓰고 나란한 인간의 모습을 생각해 보는 수밖에. 무심결에 고갤 돌려 옆을 보면 업무에 몰두한 규환이 있다. 자신을 닮아 정갈하게 정돈한 그의 자리가 내 것과는 퍽 달라 보인다. 왜인지 한때 내 옆자리에 앉고 누웠던 이들의 얼굴이 부옇게 떠오른다. 일렁이는 마음과 장면 사이를 유영하다가 호호, 웃어버리고 마는 나. 그런 내게 규환이 똑똑 문을 두드린다.

  • 참을 수 없는 우정의 가벼움

「죽어가는 도시와 탕수육」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찾아보아도 수록한 책이 한 권도 남아있지 않고, 워드나 한글 파일도 보이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탕수육 소스의 끈적하고 달콤한 맛이 얼마나 중독적인지를 알려준 이와의 이야기다. 그이와 죽어가는 도시의 중식당에서 탕수육을 먹었다. 크고 둥근 식탁에 앉아 우리의 관계가 끝났다는 예감을 했다. 나는 그날을 마침표라 생각했고, 탈고와 비슷한 것이라 이해했다.

최근에 읽은 정보영 시인의 시집 『외워서 하는 사랑 말고』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것을 받아먹었다.”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말없이 서로의 것을 받아먹는 일이 즐거움이던. 그건 여름밤 같은 어느 한때. 『뒤로하고 안아줘』에 이런 구절을 쓸 때도 나는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매미들의 구애도 거슬리지 않는 밤이었다. 창밖의 사정은 우리에게 당연한 여름 풍경일 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를 위한 이 밤의 브라스 연주쯤 되었다. 며칠 전에 달아둔 커튼이 맘에 드는 듯 규는 살랑이는 커튼 끝자락을 보다 고갤 휙 돌려 말했다. 현아, 사랑해. 활주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규의 애정 표현은 사랑스러웠고 그래서 안쓰러운 구석이 있었다. 네가 달려온 이 길의 끝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팔다리를 감아 규를 세게 안았다. 소리치며 벗어나려는 규와 놓치지 않으려는 나. 숱한 밤, 매미들도 우리의 사랑 앞에선 충실한 청중이 되어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이제 이와 같은 시절은 모두 건너온 것일까. 어릴 때처럼 탕수육을 먹는 날이 더는 특별하지 않고, 네 것을 내가 혹은 내 것을 네가 먹지 않는데. 규환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규환, 우리는 지금 어느 계절쯤인 걸까. 그에게 묻는 일을 대신해 규환의 글을 다시 읽어본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단 사실이 생각났다. 고향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오랜만의 연락인데도 금방 회신이 왔다. 답장 대신 전화가 왔지만, 받지는 않았다.

-나 버스 안이라 전화 못 받아.
-왜 연락 안 했어?

뭐라 답할지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게, 왜 연락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내가 너를 어떻게 부르겠냐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우리는 친구라 하기엔 애매한 사이잖아. 그렇다고 헤어진 연인도 아니고. 그럼 우린 대체 뭐였지. 섹파? 섹파 치곤 섹스 빈도가 너무 낮았는데. 발정 날 때마다 연락해서 타이밍 맞으면 만나는 정도? 라기에도 섹스에 미쳐있던 건 아니지 않았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사이 카톡이 하나 더 왔다.

-지금이라도 연락해 줘서 고마워. 장례는 잘 마친 거지?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오래된 우리 사이를 이제 와 곱씹는 게 좀 우스웠다. 게다가 장례를 마치고 하기에 적당한 생각은 아닌 듯했다. 나는 왜 그에게 부고를 뒤늦게야(라도) 알린 걸까. 나보다 먼저 상실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을까. 그 따위 이유로 연락한 나를 이기적이라 해야 할까. 이유야 어찌 됐든 그는 다정한 답장을 보내왔다.

우리의 추억을 담아 쓴 책을 그에게 선물했지만, 읽었는지 묻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것을 받아먹기보다는 말없이 수챗구멍을 정리하고 떠나는 어른이(관계가) 되었으니까. 적당히 아는 서로의 몸을 적당히 만지고 적당히 애무하다가 말없이 다음 단계를 이어갈 수 있으나 여기에 뜨거움은커녕 36.5도의 체온 외에 아무런 온기가 없다. 그때 우리가 하던 섹스에는 사랑 비슷한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말없이 주고받는 일련의 과정(!)이 왜 이렇게 의무적인 배출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지.

서로의 것을 나눈 이를 모두 친구라 불러도 괜찮을까. 친구라 부르긴 모호한데 다른 말로 설명하는 것 역시 어렵다. 그들 모두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애정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우정이란 단어도 적절치 못하고. 어쩌면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그것을 설명(이해)하는 일이 내게 주어진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 ‘오피스 교환 일기’에 대하여

규환의 손 내밂 덕분에 처음 사무실에 왔던 날, 메모장에 아래의 문장을 남겼다.

“우리가 앉은 자리 옆으로 큰 창이 있다. 커다란 액자 같다. 액자 안, 창밖엔 여린 느티나무 이파리가 봄바람에 살랑인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런 기대감과 설렘,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다가올 여름을 기대하기로 한다.”

사무실에 출퇴근하는 동안 규환은 내게 자주 말했다. 함께 무언가를 도모해 보자고. 그때마다 나는 좋다고 답했지만, 선뜻 나서진 못했다. 안 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나는 늘 당하는 쪽이니 이런 나를 끌어준 게 규환이다. <오피스 교환 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10개월 동안 매달 글을 써서 연재할 계획이다. 규환이 먼저, 뒤를 이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무얼 쓰게 될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인데, 설렘에 가깝다. 그때도 그랬듯이 훗날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또한 첫 문장을 쓸 때의 미세한 떨림이 지금 내게 있다. 끝엔 어떤 문장을 쓰게 될지, 어느 페이지에서 마침표를 찍게 될지 모르나 올해의 끝자락에 다시 첫 글을 꺼내 읽으며 한 시절이 된 한 해를 추억하겠지. 이 연재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듯이 나는 아직 규환을 잘 모르지만, 그는 꽤 단단하면서도 아주 말랑말랑해 보일 줄 아는 이다. 다시 생각해도 양파 같은 사람이 맞나 보다. 한 겹씩 그를 벗겨 봐야겠다.

얼마 전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고갤 들어보니 사무실 창가에 한 사람의 실루엣이 일렁이고 있었다. 손을 흔드는 규환이었다. 규환은 자주 그곳에 있다. 그곳은 내게 이곳이기도 하다. 저쪽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닿은 것이다. 이곳에서 다시 그곳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규환처럼 창가에 서서 삼각지역사거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앙상한 나뭇가지를 내다본다. 안과 바깥으로 구분된 풍경이 안팎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겠지. 있을까. 있을 거야. 생각하면서.

농담 삼아 규환을 (사무실의) 주인님이라 부르곤 하는데, 그와 함께 오피스 교환 일기를 쓰기로 한 김에 이제 그를 주임님이라 불러도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신입사원의 마음가짐으로 출근할 수 있겠고, 규환보다 일찍 출근해 그를 반겨주는 일도 해봄 직 한 일. 그나저나 규환(주임님? 주인님?)은 내일 몇 시쯤 출근하려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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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교환 일기』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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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2 thoughts on "규환 씨 나랑 동갑이에요?"

    멋져

    재밌어요 한번에 쭉쭉 잘읽혀서 좋아요

    2026.3.24

    재밌게봤어요ㅎㅎ

    2026.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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