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에 대하여

2026년 03월 03일

우정은 꿈속에서 안전하게 소비되지 않는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도

아슬하게 그 선 위에 함께 서 있는 기술이다.

  • — 루카 발랑 《중력 이후의 체온》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잠들기 전, 새벽녘 침대에 누워 있는데 친구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알림창의 밝기가 어둠을 잠시 밀어내는 순간이었다. 두달 전 흰둥이를 떠나 보내고 한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상실도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별의 경험이 없어서 누군가를 잘 위로하지 못했다고 느껴왔던 나는, 비소로 조금이나마 나는 내 안에 있는 말을 그대로 적을 수 있었다.

“사랑하고 기억한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 친구를 떠올리면 늘 ‘인생에 정답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순수 미술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부산에서 향토음식점을 하는 것과 사실상 비슷한 그의 이력만 봐도 그렇다. 좋아하는 남자 취향부터 지금 하는 일까지, 그의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왔다. 물론, 구체적인 사정은 모른다. 다만 얼굴을 마주한 적도, 목소리를 들은 지도 오래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부고를 주고받는다.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느껴졌다.

감상에 잠긴 것도 잠시, 그는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연인이라 부르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그냥 친구라고 하기엔 살을 섞었던 사이였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내가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 2집 수록곡 ‘할머니’를 들려주며 한번 울어보라고 시켰다나. 그 노래 가사는 이렇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혀지나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없던 일이 되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런 소름끼치는 이야기 하지 마.” 장난스럽게 쏘아붙였지만, 이미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나를 놀리려고 연락했다는 걸. 그는 이미 할머니의 장례식을 무사히 마쳤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연락은 슬픔의 한복판에서가 아니라, 슬픔을 통과한 뒤의 연락이었다.

그러자 대뜸 이런 말을 꺼내고 싶어졌다.

“게이의 우정이란 특별한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그가 되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내가 네 안에 사정했으니까.”

“그럼, 말 다한 거지.”

우스갯소리처럼 흘러갔지만, 농담만은 아니었다.

“기억 안 나? 그때 네 안에 사정해달라고, 내게 사정했잖아.”

이미 15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는 살가운 친구사이었고, 지금은 느슨한 친구다. 그때 그는 내 군생활을 기다려주겠다고 말했다. 지금의 친구가, 한때는 그렇게 미래를 약속하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문득 장난처럼 느껴졌다. 그 제안에 끝내 확답하지 못했던 건, 아마도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랑도, 우정도, 감히 감당할 자격이 없었으니까. 한때 우리는 터널을 통과하는 부산행 KTX럼 무모하고 빠르게 서로의 몸 안으로 들어갔지만, 지금은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위로를 건넨다. 몸에 남았던 흔적은 오래전에 사라진 대신 그 시간을 함께 지나왔다는 감각만이 남았다. 낯선 온기가 그립지 않은 새벽에도, 그 감각은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살아 있다.

  • 종길에 대해서

지금 내 뒤에 앉아 있는 종길의 출퇴근 시간은 꽤 자유롭다. 어느덧 같은 사무실을 쓴 지도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다. 3년 동안 월세를 밀리지 않고 같은 자리를 지켜온 나도 대견(?)하지만,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이 공간을 꾸준히 이용하고 있는 종길 역시 대단하다. 일주일에 많으면 이틀 정도 보고, 적으면 아예 마주치지 못할 때도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챙겨야 할 일이 수두룩할 텐데도, 그는 늘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그런 종길을 보고 있으면, 내 감정과 욕망이 얼마나 쉽게 표정과 태도에 드러나는지 문득 부끄러워진다. 나는 늘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다는 티를 내는 사람 같아서.

사실 종길을 처음 봤을 때는, 잘생겼다는 이유로 호기심이 생겼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단정하게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빗어 넘긴 모습. 순간적으로 ‘뭐야, 얼굴로 책 파는 사람 아니야?’라는 얄팍한 생각도 했다. 물론 그 오해는 그가 펴낸 책들을 하나하나 읽고 나서야 풀렸다. 책을 향한 태도와 시절을 사유하는 감각은 얼굴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오히려 그 단정한 외모와는 조금 어긋나는, 집요하고 성실한 취향이 느껴졌다.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우리는 같은 사무실을 쓰게 되었다. 사심 없이 세 번을 만나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친구가 될 자격을 얻는 ‘3의 데이트의 법칙’처럼 우리도 그랬다. 현재 하는 일과 외모(?) 그리고 나이의 동질성에서 오는 미묘한 긴장과 호기심이 조금씩 가라앉고, 서로를 향한 계산이 흐려진 다음에야 비로소 우선 ‘친구’이기 이전에 ‘동료’이라는 이름 붙일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10대에서 20대로(정확히 말하면 결혼전까지) 이어지는 우정의 황금기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쉽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내 주위에 많이 남아있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 사회 안에서 자부심을 내가 느낄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여전히 우리의 우정이 그중 하나다. 아무리 저명한 이성애자 남성 작가나 교수, 철학자가 남성성에 관해 논한다고 해도, 게이 남성을 온전히 넘어설 수 없는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단언컨대 우정일 것이다. 우리는 욕망을 통과한 뒤에도 관계를 지속하는 법을 안다. 욕망이 사라지거나 변형된 자리에서,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 몸으로 겪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우정도 시간이라는 중력을 벗어나지 못한다. 살아가는 동안 영향을 받는 계급과 나이, 시공간의 차이 역시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조건을 통과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한 관계 안에 공존할 수 있는지, 나는 종종 놀란다. 우정은 보편적인 인간 감정에 닿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주 구체적인 일상의 결에 스며 있다. 함께 밥을 먹거나 일을 하고, 농담을 주고받고, 오랜만에 안부를 두드리는 일 같은 것들. 그러므로 동시대 남성 우정을 향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쩌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조금은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지 모른다.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내 뒤에 종길이 앉아 있다는 사실을.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다가도, 필요하면 말을 건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게 어쩌면 그것이 지금 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우정이라는 걸. 그건 마치 1년 동안 같은 교실을 써야하는 소년소녀들처럼 ‘기간 한정 우정’과 같을 수도 있다. 그런 우연을 가장한 인연을 여행에 비유하자면, 사랑엔 ‘이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정은 조금 다르다. 우정에는 오히려 ‘언제든 나를 떠날 수 있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붙잡지 않으면서도 곁에 두는 마음.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문을 열어두는 태도. 아마도 나는, 그런 이해 위에 서 있는 관계를 이제야 배워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연인(이라 부르기엔 부끄럽지만)이 지금의 친구로 남아있다는 사실과, 현재의 동료가 느슨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아마도 둘 다 ‘완결되지 않음’을 감수하는 관계라는 점일 것이다. 몸을 통과한 기억을 넘어, 그리고 지금의 동료가 남기는, 문장을 통과한 시간. 나는 점점 후자에 기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우정이란, 누군가의 안에 무엇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함께 남을 무언가를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나란히 쓴 글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흔적이, 우리가 한때 같은 시간을 통과했다는 증거가 되어줄 것이라는 마음으로.

종길과 나는 우리는 서로의 몸을 모른다. 대신 서로의 문장을 안다. 그의 책을 읽으며, 나는 그의 호흡을 느낀다. 문단이 어디서 끊기는지, 어떤 단어를 끝까지 붙들고 있는지, 무엇을 말하지 않으려 하는지. 우리는 때로 서로의 문장 안으로 들어가지만, 함부로 휘젓지 않는다. 몸과 욕망은 언젠가 변하고 사그러들지만, 글은 그보다 오래 남는다. 우리가 함께 쓰는 일기는 PC 어딘가에 저장되거나 삭제되고, 누군가의 스마트폰 화면에 펼쳐지고, 종이에 인쇄되어 책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소유의 흔적이 아니라 공존의 흔적이며, 어쩌면 이 연재가 지속되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문장 속에서 조금씩 각자의 자리를 넓혀갈지도 모르겠다.

  • ‘오피스 교환 일기’에 대하여


한 배우 지망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는 안 아픈데 아픈척하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래서 연기를 못하는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오히려 그를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자조하는 말이었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척’은 못하겠지만, 정말 아프다면 누구보다도 자기 고통처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흉내는 서툴러도 진짜 감정에는 가까이 가는 사람.


나는 경험하지 않은 것을 완전히 새것처럼 써내는 데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논픽션 같은 픽션을 쓰는 작가들처럼, 혹은 픽션 같은 논픽션을 쓰는 작가들처럼, 약간의 허구를 담아보는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완전히 꾸며내지는 않되, 실제의 결을 조금 다듬는 방식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다시 바라보는 일.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쩌면 ‘교환일기’라는 형식을 빌린 ‘가공일기’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상상력을 빌려 그 순간 내가 다른 말이나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지를 글로 따라가 보는 것. 실제로는 하지 못했던 말, 하지 않았던 선택, 끝내 삼켜버린 감정들을 문장 안에서 다시 꺼내보면서, 나아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말투와 태도를 흉내 내며, 잠시 그들의 몸과 마음을 빌려보는 것. 나는 그 틈에서,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

당신이 지금 어떤 공간에 있든, 각자 자신의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회사든 집이든, 카페든 거리든. 우리는 그 공간에 맞는 표정과 목소리를 꺼내 쓴다. 자연스럽다고 믿지만, 어쩌면 오래 연습해온 역할일지도 모른다.

내게 그 무대는 이 오피스다. 몇 명의 사무실 동료가 이 곳을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는 조용히 짧게 스쳤고, 누군가는 인사를 길게 남겼다. 물리적인 시간이 공간에 쌓인다는 건 묘한 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빛을 내는 빈티지 가구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축적된다. 그만큼 무력한 것도, 또 그만큼 강력한 것도 없다.

다행히도 나는 여전히 이 사무실을 좋아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맺어진(질) 새로운 인연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편으론 동시에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일은 누군가가 옆에 있을 때 더 잘된다. 존재만으로도 약간의 긴장을 만들어주는 사람. 아마 그래서 종길이 내 뒤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돈을 버는 ‘일’을 하는 시간보다, ‘일하는 기분’을 내는 시간을 더 많이 보낸다. 멍하니 창밖을 보며 거짓말하지 않는 대도시의 풍경을 바라 보는 시간. 빌딩 사이로 떨어지는 빛과, 그날의 하늘 색에 따라 달라지는 내 기분을 관찰하는 시간. 생산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 오늘 내가 어떤 기분인지, 어떤 표정으로 이 자리 위에 있는지를 조금은 자각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연기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나다운 순간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아서.

  • P.S.

그럼, 저는 4월 1일에 거짓말처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3월 15일에는 종길의 글이 어이집니다). 오랜만에 시작하는 연재의 첫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가능하다면 주위에도 많이 소문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지금 당장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려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웹사이트를 처음 만들 때부터 ‘연재’라는 형식을 막연히 상상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런 방식으로 실현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일은 상상하는 순간부터 이미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제가 할 수 있는 상상과 가능성을 쉽게 접어두지 않으려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독자 여러분에게도 그런 시간이 잠시나마 열리기를 바랍니다. 마치 누군가와 교환일기를 주고받듯, 자신의 다른 가능성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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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교환 일기』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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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6 thoughts on "우정에 대하여"

    Dazs

    게이들의 우정 만큼 복잡다단한 것이 없죠.. 그 문법에 적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지..(물론 아직도 적응 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주변에도 소문낼게요!!

    2026.3.16
    HairM

    “뭉툭해 보이지만 가끔은 꽤 날카로운 우리들의 우정. 규환님과는 아직 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는데, 얼른 한 번 더 만나고 싶어지는 글이었어요.

    2026.3.7
    kyuhwan

    맞아요. 우리의 욕망은 너무 복잡해서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 모든 친구가 필요한 것 같아요.

    2026.3.6
    nyd

    맥주 마시면서 나눴던 게이들의 우정 얘기가 생각나요. 세상에서 제일 복잡미묘발칙한 관계 …

    2026.3.6
    광요

    단숨에 다 읽었어요 너무 재밌다...! 연재해주시는 거 기다리며 읽다보면 어느새 올해 연말이겠네요! 2026년을 함께 보내는 기분으로 읽어보겠습니다💫💫

    2026.3.5
    Sho

    오피스와 우정이라니, 팍팍한 월급쟁이인 저에겐 너무 먼 이야기지만 두 분의 이야기 기대하고 있겠습니닷💖

    20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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