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용해줘

2026년 04월 02일

최근에 한 면접을 봤다. 요즘 부쩍 남는 시간에 생활비라도 보태볼까 해서, 집과 멀지 않은 곳에 근무 기간이 3개월 정도 되는 프로젝트 계약직에 지원했다. 지금 하는 일들도 있으니 큰 기대를 하고 간 건 아니었다. 그쪽의 사정이 꽤 급해 보였다. 원래 있던 사람이 그만뒀거나, 아니면 적당한 사람을 아직 찾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

이럴 때면 늘 익숙한 생각이 든다. 몸이 달아 올라 아무나 쉽게 만나는 시기처럼, 직장도 그렇다는 생각. 급해진 쪽이 먼저 손을 내밀고, 상대는 그 손을 잠깐 망설이다가 잡는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야 생각한다. 왜 하필 나를 택했니?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때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조금 달라졌을까. 그런 식으로 스쳐 지나간 인연이 몇쯤은 떠오른다. 느낌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얼굴들, 그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텐데, 지금 와서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들.

오랜만에 구직활동을 하니, 빠르게 멘붕이 왔다. 우선, 일하는 공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피곤해졌다. 언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데스크와 의자, 아무도 펼쳐보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이 꽂혀 있는 차갑고 무미건조한 선반, 그리고 그 공간에서 요즘 내 머리처럼 버벅거리는 윈도우 PC를 써야 한다는 사실.

“이력서를 보면, 경력이 중간중간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면접관이 내게 말했다.

“아, 네. 완전히 쉰 건 아니고요. 프리랜서로 계속 일은 했고요.”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중간에 혼인신고도 하고, 아픈 반려견도 돌보고…”

“강아지요?”

“아, 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서요.”

내가 왜 이걸 설명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완전히 공백이라기보다는, 생활이랑 일이 같이 섞여 있는 상태였다고 보시면…”이라고 말을 이어가면서도, 이게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면접관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이에 비해서는 새로운 환경에 들어오시는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이 질문은 경력 단절 이슈와 약간 다른 측면 공격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해야 했고, 동시에 왜 괜찮은지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아, 네. 저는 영포티는 아직 아니라서요.”

말을 뱉고 나서, 스스로도 아차, 싶었다.

결국 그렇게 망한 면접 이후 어느 날 저녁,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혼자 봤다. 예전에 포털 사이트에서 조현병 관련 정보를 찾다가 우연히 이 영화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우리나라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굳이 이런 내용을 극장에서 볼 사람이 많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감독이 조현병을 앓는 자신의 누나와, 그녀를 치료하지 않고 집에 고립시킨 부모를 오랜 시간에 걸쳐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질병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제목처럼 답이 없는 질문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나도 비교적 단순한 궁금증이 들었다. 왜 더 빨리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을까. 부모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제3자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 분명해 보이는 판단들이, 왜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지, 그런 식의 질문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니, 질문이 점점 힘을 잃었다. 답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질문 자체가 너무 늦게 도착한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뒤에야 가능해지는 종류의 이해. 그래서 이 영화에서 내게 가장 오래 남는 건, 누나의 상태 자체라기보다 그 옆에 있는 동생의 자리였다. 돌봄이라는 선한 말로 묶기에는 너무 잔인한 시간. 누군가를 책임지고 있다고 말하기에도, 그렇다고 완전히 거리를 둘 수도 없는 상태. 그 사이 어딘가에서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는 위치를 받아들이는 것.

가족이자 동생인 감독 역시 특별히 무언가를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계속 곁에서 설득하고, 기다리고, 포기하고, 다시 시도하고. 그 반복 속에서 감정은 점점 정리되기보다는 복잡해진다. 그리고 결국 카메라를 들게 된다. 밖에서 보면 답답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매번 나름의 이유와 한계가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목이 다시 떠오른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극장을 나오는 길에, 이건 분명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데, 완전히 모르는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내 경우엔 대략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쩌면 운이 좋았던 걸까, 그렇게 생각해보려다가도 ‘운’이라는 말로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사무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았을 때, 괜히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어졌다.

“별일 없지?”

잠깐의 공백 뒤에 답이 왔다.

“응, 집에 별일 없고, 나, 일할 수도 있어.”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다.

‘일할 수도 있어’라는 부분에서 다시 읽었다.

“오, 무슨 일?”

“응, 교육 받고 상황 봐서”

“잘됐다.”

“힘들겠지. 면접에 가보고 상황 알려줄게”

“알겠어. 수고했어.”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늘 그렇듯이, 내가 묻고 누나가 짧게 답하는 방식으로. 특별할 것이 건조한 문장들이었지만, 이상하게 몇 줄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누나는 뒤늦게 조현병 치료를 시작한 지 2년쯤 됐고, 그 이후로는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복지관에 다니고 있다. 복지관의 밥은 대체로 맛이 없고, 새로운 복지사 선생님들은 나를 볼 때마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처럼 늘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때로는 그런 현실이 지침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의 시간은 우리 둘 다에게 더딘 리듬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이 흘러 직업 교육을 받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만약 누나가 일을 하게 된다면, 정말로 돈을 벌게 된다면, 그건 작은 변화라기보다 우리 가족에게 일종의 사건에 가까울 것이다. 보호자로서 충분히 자랑이 될 만한 일이고, 어쩌면 작은 경사 같은 것.

사무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바람이 조금 부드럽게 느껴졌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순간,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기 전에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천천히 맴돌았다. 누군가를 고용한다는 것, 혹은 누군가에게 고용된다는 것. 단순히 돈을 주고받는 관계라기보다는, 시간을 맡기고 어떤 책임을 나누는 방식에 가까운 일.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는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걸 조금씩 해나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동시에 이상할 정도로 기쁜 일인지. 그날은 그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나를 고용해줘.”

내가 말하자 종길이 하얀색 줄이어폰을 빼며 나를 쳐다봤다.

“뭐?”

“그 대신, 월급은 안 줘도 돼.”

웃으면서 내가 말했다.

농담처럼 들리게 말했지만, 완전히 농담은 아니었다.

“대신, 너도 나한테 고용을 받는 거야.”

종길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표정이 재미있어서 나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서로를 쓰는 거지. 필요할 때, 필요하다고 말하고.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그게, 뭐야?”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뭘 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일종의 계약 관계 같은 거지.”

(마치 <오피스 교환 일기>처럼?)

종길은 다시 화면을 보다가, 작게 말했다.

“그거, 나름 괜찮을 수도…”

창밖은 차츰 어두워지고 있었고, 사무실 안에는 따스한 아카리 조명의 불빛이 서서히 선명히 남아 있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같은 공간 안에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렇게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필요할 때 불러 쓰고, 필요 없을 때는 놓아주는 방식으로. 완전히 자유롭지도, 완전히 종속지도 않은 상태로. 그게 지금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형태의 관계가 될 것 같았다.

<끝>

P.S. 

글이 늦게 올라온 점,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 글은 한 달, 종길의 글을 이어받아 15일이라는 시간이 꽤 여유롭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늘 조금 늦는 사람이라 부끄럽게도 사람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뻔뻔하지만, 혹시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다면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신 너무 늦지는 않겠습니다).

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지난 한 달이었습니다. 이번 달의 글에는 역시나 실제 있었던 일도 있고, 가공된 이야기도 섞여 있습니다. 사람의 존재를 단순히 생산적인 경제 활동이나 대표되는 직업, 혹은 하는 일이라는 적극적인 면모로만 딱 잘라 설명할 수는 없겠지요. 때로는 소극적인(동시에 그렇지 않은) 형태의 일이 더 좋아지기도 합니다. 돌보기, 관찰하기, 관계 맺기, 머무르기, 생각하기, 존재하기, 실패하기, 망하기, 사랑하기…

그나저나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봄이 늦게 오는 것 같아 투덜거렸는데, 어느새 마법처럼 완연한 봄날씨가 되었습니다. 산수유와 매화, 목련과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한꺼번에 피어나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찬란해지는 거리의 모습을 보며, 이 시간을 붙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계절이 있고, 그 사이에 우연한 만남이 있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가 마시는 커피와 나누는 대화, 영화를 보는 시간, 책을 읽는 시간, 눈을 마주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붙잡고 싶어지는 때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낄 수 있는 4월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더보기

『오피스 교환 일기』에 대해서…

아래, 댓글 기능과 방명록(Contact) 기능을 활용해보세요.

댓글은 관리자 승인 후 익일 게시됩니다🥹

코멘트

One thought on "나를 고용해줘"

    늦어도 올라온 글을 늦게 읽어서 괜찮습니다. 꾸준히 읽고 싶습니다. 너무 치열하게 쓰지 말아주세요.

    2026.5.6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관련된 포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