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많은 남자

2026년 05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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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를 갔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절대 나무를 들이지 말 것’ 응? 그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가 최근에 한 사주를 봤는데, 자신에게는 불이 많은 사주라서, 나무가 있게 되면 모든 걸 다 태워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집에 나무를 두지 말라는 건 너무 한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반응은 꽤 확고했다.

“응, 이하사면서 사실 가구도 다 쇠로 바꿨어.”

진짜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공기가 달랐다. 차갑다고 해야 할지, 부자연스럽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지나치게 매끈해서 미끄러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옷장은 은색 스테인리스 스틸 프레임이었고, 식탁은 투명한 유리였고, 의자 다리는 전부 금속이라 앉을 때마다 긁히는 소리가 났다. 정말이지 말그대로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무 특유의 결이나 미묘한 따뜻함 같은 게 완전히 사라진 공간이었다. 그 말을 듣고, ‘그럼, 나무 젓가락이나 종이컵도 안돼?’라고 물어봤더니 그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젓가락은 스댕 쓰고, 종이컵은 안 써.”라고 했다. 아니, 하물며 치킨 박스는 어떡하냐고 했더니, “배달오면 바로 접시에 옮겨 담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와, ‘아니, 그래서 이 책들은 다 어떻게 할건데?’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친구의 불같은 성격을 알기에 참기로 했다. 이미 예전부터 지갑에 부적을 고이 간직하게 다닌단 사실도 알고 있었고, 최근 자신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름도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비과학에 빠진 그 친구를 속으로 비웃다가도(아니다, 그는 사주도 통계학에 근거한 과학이라고 예전에 말했었다), 내심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려면 이 정도의 각오 정도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그렇게 나약한 마음으로 이토록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의 내 삶도 갈피를 못 잡는 것인가 하는 신묘한 착각이 들었다.

한동안 그 일을 잊고 살다가, 문득 내 주위 사람들이 왜 사주에 열광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모든 모임에서는 결국 이야기가 사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물이네’, ‘금이네’, ‘나무네’,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 보면, 사주의 정확한 기원이나 원리는 모르지만, 무슨 포켓몬 캐릭터 이야기하듯 꽤나 귀엽다. 어쨌든, 얼마 전에도 술자리에서 그런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일 이야기를 하다가, 누가 갑자기 “서호는 왠지, 확실히 결정하는 법이 없고 중요한 순간에 안개처럼 조용히 사라지는 걸 보면 물 같아”라고 말하자,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자기 오행을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유안이는 “나는 금인데, 현침살까지 있어서 말이 가끔 너무 상처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올 때가 있어.” 나는 그 대화를 유심히 들으며 “그래서 너네들이 그랬던 거구나”라고 속으로 수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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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 사주는 금이다. 사실 지난 30여 년간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지만, 역시나 그 설명과 나는 꽤 맞는 구석이 있었다. 모든 물건의 기본에는 그레이 빛이 도는 걸 좋아한다. 요즘 말로 그걸 쇠테리어라고 하나, 사실 그저 트렌드를 따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금속의 성질이 늘 곁에 있는 게, 일할때나 생활할 때나 머리에 힘을 주게 된다. 그리고 손으로 직접 만드는 제조 일을 하거나, 힘이나 테크닉을 써야하는 기술직은 맞지 않는다. 그대신 뾰쪽하게 글을 쓰거나, 유통하고 기획이나 편집 일을 하는 게 내 사주의 결과 맞다고(존경하는 포춘텔러께서 말)했다. 게다가 관계에서도 누군가의 영향을 받기 꺼려해서, 내 성질을 바꾸려는 선을 넘는 무언가의 시도를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늘 적은 사람과 에너지를 아끼며 되도록 혼자 있는 게 좋았다. 물처럼 하강해 결국 강으로, 바다로 흐른다거나, 생명력을 가지고 나무를 키워내고 숲을 이룬다거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주고 어두운 곳을 밝히는 촛불같은 그런 사람도 아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종로3가 귀금속 거리 쇼케이스 한편에 진열된 세공된 작은 보석 같달까?

믿거나 말거나 그래서 나는 반대로 사주에 물이 많은 융통성 있는 사람이 좋다. 일단 말그대로 물이 많은 사람이 좋다. ‘제가 물이 많아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귀여운가. 그래서 자연스럽게, 종길의 사주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랑 맞는 거야 안맞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종길도 얼마 전에 사주를 봤다고 했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 없을 것 같다더니. 생각보다 이런 건 한 번씩 해보는 쪽이네. “그래서 뭐래?”라고 물었더니, 종길은 잠깐 생각하다가 “굶어 죽을 일은 없대.”라고 답했다. 그게 뭐냐고 웃으니까, 설명을 덧붙였다. “물이 좀 있고, 금도 있고, 불도 있고, 이것저것 골고루 비빔밥처럼 다 섞여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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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물 많아?”라고 묻자, 종길은 “왜?”라고 되물었다. “나는 금인데, 사실 사주에 물이 없거든. 그래서 친구도 없고. 돈도 없나봐”라고 말하니까, 이게 무슨 대화인가 싶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마치 원래부터 이런 소통방식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종길은 “네가 금이라서 왠지 모르게 차갑다.”라고 했고, 나는 “너도, 만만치 않거든”이라고 받아쳤다. 그는 “나는 물이 있어서 괜찮아”라고 했고, 나는 “물이 많으면 또 흘러가잖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종길이 “그건 네가 붙잡아야지”라고 했다. 말이 점점 이상해지는데, 멈출 생각은 둘 다 없었다. 웃으면서도, 그 안에서 뭔가를 찾아보려고 하는 느낌이 있었다. “금이 물을 만든다며”라고 했다가, “아니, 물이 금을 녹이는 거 아니야?”라고 하고, “그건 불 아니야?”라고 다시 고쳐 말하고, 결국 둘 다 정확히 아는 건 하나도 없는 상태로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굳이 확인 안해도 되는 걸, 굳이 보고 싶어지는 관계들이 있다. “근데 우리 1년 정도 같이 사무실을 써보니까 그렇게 궁합이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라고 내가 말했다. ‘근데 작가들이 같이 창작하고 동업하는 것도 연인이나 결혼처럼 궁합도 필요하다던데, 우리도 심심한데 사주나 볼까?”라고 물어보고 있자니, 나는 이미 집에 나무를 들이지 않는 친구처럼 사주를 맹신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현실로 돌아와 이 연재 얘기를 놓고 보면, 다음 회차에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 이런 형식은 어떨까, 나는 자꾸 구조를 세우려고 하고, 종길은 그걸 잘 받아서, 다른 방향의 글을 썼다. 감정의 흐름이나, 일상의 순간이나, 계절의 감각 같은 것들. 내가 자꾸 선을 긋고 정리하려고 하면, 종길은 그 선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너무 좋았다. 단순히 교환 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퍼즐을 맞추고 받고 있다는 느낌. 종길은 어떨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걸 굳이 사주로 말하면, 금 같은 것과 물 같은 게 섞이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하나는 모양을 만들고, 하나는 그 모양을 흐르게 하는 쪽.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요즘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자주 나는 습관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종길에게 던졌다. 이걸 실제로 해보면 어떨까, 이걸 그냥 글로만 두지 말고 밖으로 꺼내보면 어떨까, 이를테면 연기를 해보면 어떨까 같은 것들(!). 이 연재가 단순히 기록이 아니라, 어떤 실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어느 지인이 내게 물었다. 이 연재가 어떤 의미냐고. 나는 별 생각 없이, 농담처럼 말했다. “그냥 글로 섹스하는 거죠.” 말해놓고 보니까 조금 과했나 싶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 같지는 않았다. 서로의 글을 보고, 기다리고, 상상하고, 도발하고 그 과정에서 뭔가 새로운 게 적어도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느낌.

만약 우리가 뭔가를 ’낳을‘ 수 있다고 하면, 그건 아마 이런 방식일 것이다. 실제로 무언가를 잉태하는 대신, 어떤 결과물을 계속 흘리는 것. 이 연재 자체가 일종의 번식 방식아닌가? 물론 그게 뭐가 될지는 아직 전혀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금 궁합을 이야기하기엔 이미 늦은 타이밍이다. 이미 뭔가가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인데, 그걸 나중에 설명하기 위해서, 미리 이유를 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사주나 궁합이라는 것도, 이미 벌어진 일들을 나중에 납득하기 위해 붙이는 말 같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궁금해진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게, 우연히 맞아떨어진 건지, 아니면 정말로 맞는 조합이라서 가능한 건지. 그래서, 우리의 궁합은 어떨까. 아직은, 굳이 모르고 있는 상태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

<끝>

사진: 김찬영

P.S.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종길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새 마음으로 맞이하는 5월! 이번 달에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전해왔는데요, 그 인사를 독자분들께도 함께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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