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026년 07월 01일

해가 길어진 6월의 어느 날, 퇴근하고 종길과 회식으로 고기를 먹으러 갔다. 삼각지역 4번 출구 쪽, 한강대로 대로변에 있는 ‘삼각정’이라는 노포(예로부터 노포라는 글자만 보면 가슴이 설레왔다). 사무실로부터는 걸어서 약 십분쯤. 건물은 낡았고, 역시나 오래된 간판과 메뉴엔 일본어가 병기되어 있는데, 정작 안에는 외국인으로 패싱되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 그런 데다 만석임에도 불구하고 이날은 운이 좋게 대로변 자리에 앉게 됐다. 내부는 테라조 바닥에 동그란 스댕 테이블, 자리마다 연탄 화로가 박혀 있고, 한쪽에는 “물은 셀프”라고 반말로 딱 붙은 냉장고가 있었다.

80년대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집이라고 종길이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를 했다. 돼지고기 특수부위를 파는 곳인데, 대중적인 목살과 삼겹살이 아니라 ‘모소리’와 ‘가오리’라는, 여기서만 부르는 이름의 고기를 판다. 모소리는 항정살 쪽인데 씹으면 사각사각했고, 가오리는 목과 등 사이 살이라 양은 적지만 육즙이 흥건하고 쫀득했다.

연탄불 위의 공사장 철근 고기판 위에선 기름이 튀며 타는 소리가 계속 났고, 환풍기가 없어도 건물 양쪽이 뚫려있어 고기를 바라보는 내 시야는 그 어떠한 미래보다 선명했다. 종길이 집게로 가오리를 뒤집으면서도 중간중간 내 뒤를 봤다. 대로변으로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직장인과 유행하는 패션의 사람들이 섞인 용리단길의 풍경. 그리고 아이스크림이 든 편의점 봉투를 든 사람들이 저 너머로 스쳐 갔다.

“여기 외국인 친구 오면 좋아하겠다.”

“왜?”

“이런 데를 어떻게 알고 오겠어.

간판도 이상하고, 부위 이름도 처음 듣는 거고.”

나는 종길을 배려해서 길가를 등지고, 종길은 거리를 바라보며 고기를 열심히 구웠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난 너랑 있는 게 낯설고 좋아…> 라고 말하면 되는데, 좋은 여행지를 가서도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랑 오면 좋겠다, 부모님이 참 좋아했을 텐데, 반려견이랑 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종길이 그 말을 했을 때 머릿속엔 누군가가 있었을까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는 않았다. 대신 소주잔에 맺힌 물방울을 손끝으로 훑었다.

취기가 슬슬 올라오면서, 여기가 지극히 한국적이거나 혹은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지 잊고 있던 걸 다시 보게 해주는 말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종길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걸까.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다. 소맥 덕분이 아니라. 그렇게 어느 직장인들처럼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며 소맥을 몇 잔 넘겼다.

  • 여기 망신살 1인분 추가요~

믿거나 말거나, 사주에 ‘망신살’이라는 게 있다. 고기 부위는 아니고, 아무튼 고기 4인분과 들깨가루 걸쭉하게 들어간 내장탕까지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먹고 나니, 나는 망신을 된통 당하고 싶어졌다. 하필 이런 날에. 술이 들어가니 살짝 몸이 뜨고, 망신살을 뻗치고 싶어진 것이다.

나는 언젠가 당할 큰 망신을 대비해서 일상에서 작은 망신들을 미리 쌓아두고 있다. 일상의 작은 행운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랑 비슷한. 큰 행복만 좇다 보면 작은 행복을 놓치고, 정말 인생에 행복이 없다고 느껴질 때에야 그 작은 것들이 삶을 지탱해왔다는 걸 깨닫는다는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사주에 망신살이 세면 목욕탕에 가서 낯선 사람들 앞에 합법적으로 나체를 드러내라는 말이 있다. 목욕탕에 안 가려면 수영장을 가거나, 아니면 일상에서 스스로 망신살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다.

우리는 후식을 먹으러 편의점에 들렀고, 하얀 냉동고 불빛 아래 2+1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탱크보이를 골랐다. 계산하고 나오니 봉투 안에서 얼음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하나 남는데 어떡하지?”

“남은 거 누구 주고 싶어.”

왜 갑자기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말을 걸고 싶어졌다. 예전에 호주 멜버른에서 지낼 때,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다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지나가던 누군가 콘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어준 적이 있다. 손바닥에 닿았던 지구 반대편의 그 서늘함, 콘이 눅눅해지기 전 아주 짧은 순간의 온도가 아직도 기억난다.

운전석의 그녀가 내게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이걸 먹어도 되는 걸까 잠깐 고민했다. 혹시 나를 미행하던 사람이면 어쩌지. 혹시 뭘 탄 거면 어쩌지. 내가 홈리스처럼 보여서 이것도 일종의 인종차별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1월인데도 남반구라 섭씨 30도에 육박하는 날씨였고, 손안에서 녹기 시작하는 아이스크림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래서 먹었다. 녹기 전에, 아주 맛있게. 결론적으로 이런 행운이 다 있나 싶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그 기억 때문인지, 오늘 밤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도 남은 아이스크림을 누군가에게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타깃은 골목길에서 마주친 네 명의 일행이었다. 딱 봐도 남자 둘, 여자 둘, 커플 모임 같았다. 다들 웃고 떠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비장하게 다가가서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살짝 들어 보였다.

“저기, 아이스크림이 2+1이라서 하나가 남았는데, 혹시 드실 분 있으세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넷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정확히 동시에, 마치 미리 합을 맞춘 것처럼. 서로의 난처함을 확인하듯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짧은 정적 끝에 그중 한 명이 어색하게 웃으며 “아, 감사한데 저희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넷은 순식간에 대열을 정비해서 지나갔고, 나는 반쯘 녹아 봉투 끝이 축축해진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채 그 자리에 남았다. 방금 무슨 사이비 종교 전도를 한 사람처럼.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도 모두 실패했다.

나는 좌절했다(망신살 누적이 +3 되었습니다).

종길이 뒤에서 자기까지 민망한 듯 비웃었다.

“여긴 한국이야. 누가 모르는 사람이 주는 아이스크림을 받아.”

  • “…그럼 이건 누가 먹을까?”

시간이 며칠 흐르고, 문득, 2+1을 생각하다, 우리가 2+1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자제가 1+1이 될수도 있고, 아니면 각자 애인이 있으니 서로에게 +1인 관계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남는 +1을, 잉여의 가능성을 어떻게 쓰는 게 좋을까?

얼마 전 읽은 조프루아 드 라갸느리의 《셋, 바깥을 향한 열망》(글항아리)은 저자인 자신, 그리고 오래된 연인인 디디에 에리봉, 그리고 한때 에리봉의 제자였고 지금은 훨씬 유명해진 젊은 소설가 에두아르 루이, 이 셋이서 십수 년을 함께 지내온 삶을 기록한 흥미로운 우정 예찬 에세이다.

라갸느리는 사랑과 달리 우정이란 2가 아니라 3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썼다. 연인 관계는 구조적으로 안쪽을 향해 닫히지만, 우정은 반대로 바깥을 향해 열린다는 것이다. 둘만의 관계에는 늘 상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있는지를 신경 쓰는 마음이 스며들지만, 셋이 되는 순간 그 감시와 의심의 회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독점할 수 없는 구조라서, 질투나 배신이라는 말 자체가 무력해진다는 것.

솔직히 말하면, 이 책에서 가장 웃겼던 지점은 따로 있었다. 결혼도 육아도 부동산도 비껴간 채로, 그저 글 쓰고 대화하고 여행 다니며 늙어가는 지식인 셋의 삶. 그게 어렴풋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태도랑 겹쳐서, 어이없게도 일종의 롤모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쓰리섬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때로는 거칠게, 아주 러프하게 내 멋대로 줄이자면, 이 책이 은근히 하는 얘기는 이런 거다. 게이로서 안 걸려도 될 함정이 딱 셋 있는데, 하나는 부동산에 인생을 저당 잡히는 것, 하나는 자기 삶을 육아 스케줄에 통째로 넘기는 것. 그리고 ‘교수가 되지 않기’

물론 라갸느리는 훨씬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내가 읽으면서 실실 웃다가 혼자 깔끔하게 정리한 결론이다. 그리고 그 관계를 어떤 하나의 틀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있는 건 있다. 젊은 제자였던 에두아르 루이가 그 둘 사이에 끼어들면서 생기는 신선함, 낡은 관계에 계속 바람을 넣어주는 그 역할. 딱 그날 우리의 2+1 아이스크림에서, 남는 하나가 하는 일 같은 거.

완성된 관계란 늘 2로 끝나야 한다고 배워온 우리에게, 남는 하나, 그 잉여의 자리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문을 열어두는 자리일 수 있다는 생각. 그런 상상력으로, 어쩌면 언젠가 함께할 외국인 친구를,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를 그 삼각정 자리에, 우리의 사무실 옆에 앉히길 바란다. 누가 먹기도 전에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질투와 독점이라는 이성애의 일상적인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해, 셋이서 함께 쓰고 함께 살아가는 처방전 2+1은 그런 가장 정치적인 관계의 형태일지도 모르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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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교환 일기』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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